내팽개쳐진 조남명 비석을 보며(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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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1-15 00:00
입력 1997-01-15 00:00
「동패낙송」에 있는 남명조식의 일화하나.젊은날 길을 가다 호랑이를 만난다.호랑이는 남명에게 처제를 자기한테 시집보내라면서 안들어주면 집안을 쑥밭으로 만들겠다고 으름장놓는다.결국 혼례식을 치른다.치러놓고보니 호랑이는 이웃집총각.둔갑술까지 익힌 재사였으나 문벌이 낮아 조남명을 이용했더란 내용이다.하나 아무래도 좀 엄벙부렁하다.늡늡한 기질이었던 그를 건드려본 얘기였을까.

그는 금방울을 차고서 호를 성성자라 했다(권별의 「해동잡록」).성은 영리하다는 뜻과함께 깨닫는다는 뜻도 갖는다.어느날 그금방울을 제자에게 주면서 말한다.『이방울의 맑은 소리가 경계하며 반성하게 한다.잘 간직하라.몸가짐을 곱게 조라떨지 말고 삼감으로써 방울한테 죄를 짓지말라』

여러번 나라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나중에는 두류산백운동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산천재」라는 편액을 달았으니 그심경을 헤아릴 만하다.언제나 문닫고 홀로 앉아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그는 당대의 성리학하는 학자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사람들이 다떠위는 저잣거리에 나가면 없는게 없다.그러나 제건 아니고 남의 것일 뿐이다.차라리 한필 포목이나 한마리 고기를 사오느니만 못하다』.실학냄새를 풍긴다.

그와 퇴계 이황은 곧잘 비겨진다.무엇보다도 1501년생으로 나이부터 같다.또 퇴계가 70세로 먼저 타계하고 그 2년후 남명도 뒤따른다.그들의 나이 30대후반 들면서부터 『경상좌도에 퇴계가 있고 경상우도에는 남명이 있다』는 말이 나돌만큼 되어 있었다.하건만 글은 주고받으면서도 서로 만나본 일은 없다.퇴계는 물러나면서도 벼슬을 하고 남명은 하지 않았다.남명의 벼슬자리는 퇴계가 천거한 일도 있다.

남명은 자신을 퇴계와 비기면서 이렇게 말한다.『나는 옛글을 배워 이루지 못했다.…비유컨대 나는 비단을 짜다가 필을 못이뤄 세상에 쓰이기 어렵고 퇴계는 깁을 짜 필을 이루었으니 쓰일수 있다』.퇴계는 눈감으면서 명정에 벼슬이름은 쓰지말라 했는데 이말을 전해들은 남명은 애통해하면서도 『여러벼슬 다해놓고선…』 하더라던가.

조남명의 비석이라면서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는 사진이 얼마전 신문에 실렸다.무슨 까닭이었을까.지하의 남명이 껄껄 웃는양하다.〈칼럼니스트〉
1997-01-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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