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해」와 사회교육/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서울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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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1-03 00:00
입력 1997-01-03 00:00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정부는 그 조직위원회 주관으로 오는 21일 선포식을 갖는다.지난해 출범한 조직위원회는 이미 사업계획까지 마련해 놓았다.그러고 보면 선포식과 더불어 이 해의 여러가지 활동이 곧 가동할 전망이다.이처럼 올해를 주제가 있는 해로 지정한데는 각별한 사연이 배경에 깔렸다.지난 1995년 우리 문화재 세점의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세계문화유산 등록이 그것이다.

이 해의 무게는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민족 자긍심을 높인다는 쪽에 실었다.그래서 조직위원회는 「민족의 얼 문화유산 알고 찾고 가꾸자」는 표어를 정했다.그 표어가 제시한 내용을 실천하자면 정부가 챙겨야할 일과 국민이 할 일을 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또 민족문화유산과 깊은 관련을 가진 종교도 함께 나서야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현실적으로 짊어져야할 부하는 정부에 더 많이 걸려있다.국민들에게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책무 같은 것도 아직은 정부의 몫이다.무지는 때로 인류문화유산 망실을 재촉했다.중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갑골도 그런 위기를 겪었다.1889년 갑골에서 기록성을 발견하기 이전까지는 말라리아 민약재로 거래된 짐승뼈에 지나지 않았다.뒷날 갑골은 신화속의 은을 역사의 실체로 끌어올린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한민족의 자긍심 높여야

우리도 그만은 못하더라도 역시 잘못을 저질렀다.신안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린 청자가 섬사람들 집 강아지 밥그릇으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얼마되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대대로 내려온 전세품따위의 가보를 엿 바꾸어 먹지 않았던가.그렇듯 헐값에 팔려나간 우리 문화유산들은 약삭빠른 외국인 수장고를 가득 채워주었다.

1906년 초대 통감으로 이 땅에 온 일제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와 고종사이에 얽힌 청자이야기는 사뭇 충격적이다.임금은 일인 침략자가 보여준 청자가 어느시기에 어느나라가 만든 물건인지를 몰랐다고 한다.참으로 서글픈 대목이다.그럴진대 민중의 인식은 어떠했겠는가.오늘날 세계 미술품경매시장에서 우리의유출문화재(유출문화재)한 점에 수십만달러라는 초고가에 팔리는 현실을 본다.민족문화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한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민족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기능이 요구되고 있다.이른바 박물관대학으로 흔히 호칭하는 문화재교양강좌의 확충과 활성화를 먼저 떠올려보았다.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강좌를 개설한 대학기관이나 박물관을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지원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그런 정책이 뒷받침 한다면 현재 극소수로 운영되는 강좌가 얼마든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사회교육 측면에서 반드시 고려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는 민족문화유산 이해계층을 두텁게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기위해 필요한 인적자원 육성인 것이다.우리나라에도 영국 고고학협의체와 같은 민간단체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순수 아마추어 고고학연구자 모임인 이 협의체는 회원활동을 통해 문화유산 파괴위험을 세상에 알리고 구제하는 일을 해내고 있다.국민 모두가 문화재를 향유하는 권리자로서의 자각을 의미하는 활동인 것이다.

○문화재 강좌 활성화 필요

우리가 정부를 세우고 홀로서기를 시도한지도 어언 반세기에 이른다.민족유산에 대한 관심은 좀 뒤늦게 돌려 문화재보호법과 그 시행령은 1962년에 제정되었다.그런 법령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문화재는 그동안 개발논리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관계제도 및 법령정비와 이에따른 운용의 묘를 모색하는 정부의 노력도 이 해에 기대하고 싶은 일이다.<부국장급>
1997-01-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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