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도」와 승은호 회장:2(테마가 있는 경제기행: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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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9-10 00:00
입력 1996-09-10 00:00
◎해외진출과 국내 부도/모기업 시련이 인니 정착 결정적 계기/박 전 대통령­김형욱 알력여파로 “정치적 희생”/사직당국 수사 이어 국세청서 모든 장부 압수

자카르타 시내 외곽에 위치해 있는 16층짜리 에카라이프 빌딩.승은호 회장은 이 건물 14층 한쪽을 회장실로 쓰고 있었다.

회장실은 크지 않았다.한편엔 자카르타암센터 건립에 기여한 공로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는 사진이 있었다.

그는 『뭐 취재할 게 있다고 멀리까지 왔냐』면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정정얘기를 말머리로 꺼냈다.

『국내에선 인도네시아가 불안하다고 걱정하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아요.인도네시아 사태는 단발적인 사건이며 한총련사태보다 심각하지 않았습니다.국내 언론들이 메가와티사태를 지나치게 부풀려 보도하는 바람에 이곳에 진출한 우리기업들의 사업여건이 안좋아졌습니다』 실제 인도네시아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평온했다.

승회장은 『한국인들이 비자를 매년 연장해 사용하기 때문에 이곳 정부에 부정적인 보도가 국내에서 자꾸 나오면이민국 비자심사가 까다로워진다』고 했다.그가 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고 있어서 하는 얘기같지만은 않았다.

『기아자동차의 인도네시아 국민차사업만해도 국내 언론이 권력형 비리라는 시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유산위기로까지 몰렸습니다.일본이 WTO에 제소하고 미국업체가 이의를 제기하려는 판에 우리언론까지 북을 칠 필요가 있습니까.인도네시아 거리에 돌아다니는 차들,다 일본차입니다』승회장은 현지기업의 고충을 한참 얘기하고는 인도네시아 진출얘기를 털어놨다.

코린도가 인도네시아에 뿌리내리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모기업인 동화기업의 부도가 결정적 요인이다.동화기업은 69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다.원목을 수입해 쓰느니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베자는 생각에서였다.동화기업은 71년 인니 동화라는 형태의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을 세운다.트레일러 등 중장비와 한국인 1백50명이 원목선을 타고 열흘간 항해끝에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칼리만탄 원목개발사업이 착수된 것이다.

원목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나갔다.그러다 예기치않게 부도를 맞는다.부도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의 알력에서 파생된 「정치적 부도」였다.시점은 김부장이 박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반한활동을 한참 하던 때.



동화기업은 그 즈음 수입원목을 인천항에 띄워놓고 있었다.그런데 간척지 사용허가가 김형욱씨의 입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돌면서 3공정부의 곱지않은 시선이 동화기업에 쏠리게 됐다.

어느날 사직당국이 동화기업에 들이닥쳤고 회사간부가 모두 연행됐다.사직당국의 수사가 방위성금을 적게 내 정부에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어쨌든 수사결과 드러난 혐의가 없어 모두 풀려나왔다.그러다 일주일쯤 뒤,이번엔 국세청이 닥쳤다.동화기업 경리장부들이 마포 주류연구소로 옮겨졌다.75년 4월1일의 일이다.<권혁찬 기자>
1996-09-1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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