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왜 자수하셨나요”/조덕현 전국부 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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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5-08 00:00
입력 1996-05-08 00:00
『엄마 몸 아픈데는 없어요.못난딸 때문에 어머니가 죄인이 되셨어요』
『이곳으로 오니 마음이 편하구나.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세상밖으로 밀어낸 것이다.나 대신 고생이 많았구나…』
어버이 날을 하루 앞둔 7일 상오 9시47분 경기도 광명경찰서 유치장 면회실.
어머니의 범행을 자신의 죄로 안고 20일간 구속됐다 풀려난 딸 정미숙씨(42)와 진상을 밝히고 옥살이를 자청한 친정 어머니 이상희씨(71)는 끊어질듯 끊어질듯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씨는 지난달 16일 시흥시 신천동 자신의 집에서 딸을 4년여 동안 괴롭혀온 사위 오원종씨(50)가 또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하며 행패를 부리자 참다 못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딸 정씨는 『엄마가 교도소에 가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자신이 범행했다고 경찰에 자수,다음날 구속됐다.
어머니 이씨는 구속된 딸을 찾아가 『경찰에 사실대로 밝히자.양심의 가책을 느껴 더이상 못살겠다』며 애원했고 급기야 정씨의 변호사를 찾아가 범행사실을 털어놨다.경찰과 검찰의 재조사결과 이씨의 범행으로 밝혀져 구속 20일만에 딸 정씨는 풀려났지만 몸바쳐 키워준 어머니를 차가운 감옥으로 보내야 했다.
정씨가 오씨와 악연을 맺게 된 것은 3년전인 93년.제주도의 한 다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단골인 오씨의 주문을 받고 차배달을 갔다가 성폭행 당하며 억지 부부가 됐다.
전과 19범에 직업도 없는 건달인데다가 알코올 중독자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인연」을 거부했지만 온갖 가혹행위가 뒤따랐다.지난해에는 빙초산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군복무중 때마침 휴가중이던 오씨의 큰아들(21)은 아버지의 살해 소식을 할머니로부터 전해듣고 『자살을 했다고 하자』며 할머니와 계모를 감쌌다고 한다.
오씨에게 당했던 것처럼 학대받는 여성이 있다면 그들을 돕는데 남은 날들을 보내고 싶다는 정씨는 깊이 고개를 떨구며 광명경찰서 유치장을 떠나고 있었다.〈조덕현 기자〉
1996-05-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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