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3당 「총선 민의」 어떻게 수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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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4-13 00:00
입력 1996-04-13 00:00
12일 아침에 열린 제7차 선대위전체회의에서 DJ(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선거기간에 비해 말수도에 적었다.이보다는 덜했지만 JP(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표정도 썩 밝지 않았다.『예상의석을 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비례』라며 속내를 떨어놓지 않아 1백석을 줄곧 외쳐온 DJ보다는 충격이 덜한 것 같았다.
가장 참담한 기류에 휩싸인 당은 민주당이다.그 흔한 총평 기자회견마저 생략하는 등 졸지에 「줄초상」을 당한 상가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야권의 앞날에 암운이 짙게 드리워진 것이다.
냉엄한 총선결과는 이처럼 야3당에 또다른 선택을 강요한다.강도와 방향은 모두 다르다.DJ와 JP는 당내 위상과 향후 진로에 대한 것이라면,민주당은 사느냐,죽어 흩어지느냐는 생존의 갈림길이다.
야3당의 1차적인 선택은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의 수렴절차다.이는 DJ와 JP의 권한축소와 위상하락을 전제로 한다.누가 총선에서 상처를 더입고,덜입고의 차원이 아니다.민의 결과,특히 수도권에서 신한국당의 승리는 「반 DJ와 반 JP 바람」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DJ가 먼저다.국민회의 패배와 민주당의 동시 몰락은 현재로선 지난해 지자제선거 이후 이뤄진 야권분열에 대한 유권자들의 질타로 밖에 달리 해석되지 않는 까닭이다.
DJ는 일단 숙고에 들어갔다.「부진에 대한 분석과 향후 당운영 방안 정리」가 겉으로 밝힌 이유이나,결국은 자신에 관한 문제다.그가 선택할 방향은 『많은 중진들이 탈락한 마당에 나만 국회에 들어가면 부담스러울 뻔했는데,그나마 다행』이라며 전국구 좌절을 애써 자위한 대목에서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중진의 대거 탈락은 곧 당내에 엄청난 힘의 공백이 생겼고 유권자들이 정치권의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이에 맞춰 전략을 수정,재기를 노릴 것으로 점쳐진다.
그것은 현재의 당장악력을 일정한 선에서 신진기예들에게 균점을 허용하는 형식의 대대적인 체제정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또 총선결과를 의식,적당한 시기에 「당얼굴과 대권후보」 분리와 같은 모양새를 갖춰 새로운 얼굴을 전면에 내세우는 야권통합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선전은 했다고 하지만 JP의 앞날도 순탄치만은 않다.그와 정치 운명공동체인 DJ가 야권분열에 대한 책임과 세대교체 바람으로 추락위기에 몰린 때문이다.두사람 가운데 한사람의 퇴조는 곧바로 「3김시대의 종언」으로 이어진다.
또 내각제 개헌 추진도 독자적인 힘으론 물 건너간 상황이어서 그의 대권전략 또한 수정을 해야 할 판이다.이것은 다른 당,세력과의 연대와 전폭적인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다.벌써부터 야권 일각에서 DJ와 JP가 내각제를 고리로 연대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JP도 영향력 약화를 감수하는 모양새로 출발점을 삼을 것 같다.각개약진이 예상되는 중진,특히 경북·대구출신 인사들에게 어느 정도 국회직과 당권의 지분을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여권체질의 일부 인사들로부터 시작될지 모르는 당내 동요를 미리 차단함으로써 불어닥칠 세대교체 삭풍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전략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민주당이다.선거전까지만 해도 원내 3당이던 이들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3김 청산」이라는 정치적 실험이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혔고 독자적인 「텃밭」이 없었던 탓에 좌초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반의 예상처럼 지도부 인책론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국민의 눈에 초상집의 재산싸움으로 비춰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생존하기 위한 내부체제 정비가 한목소리다.이부영당선자를 중심으로 한 새정치주체그룹과 장을병 공동대표의 개혁그룹,전국구 당선자가 중심이 된 기존 정치세력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독자적인 원내 교섭단체 추진이나 다른 당과의 통합 움직임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후일을 도모하는,다시말해 「당대 당」의 통합을 꾀하는 수준의 전열정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양승현 기자〉
1996-04-1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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