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노씨 직접신문 내용
수정 1996-01-30 00:00
입력 1996-01-30 00:00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김영일재판장은 29일 3차공판에서 검찰의 구형에 앞서 노피고인을 상대로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이유와 경위 등에 대해 30여분 동안 신랄하게 직접 신문했다.
다음은 신문내용.
▲김영일재판장=대통령으로서 연간 어느 정도의 금액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정해 둔 적이 있습니까.
▲노태우피고인=(목소리를 높여서)나 혼자서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김재판장=써야 할 항목과 필요한 금액을 맞춰 예정해 두었습니까.
▲노피고인=뭐,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한 바는 없습니다.
▲김재판장=통치자금과 정치자금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노피고인=당시 생각은 이랬습니다.정치자금은 정당등에 가는 돈이고 통치자금은 그보다 범위를 넓혀 각 기관이나 어려운 곳 등에 쓰이는 겁니다.
▲김재판장=선거자금,당비 등은 민정당 총재의 입장에서 갖는 정치자금이며 정부기관 격려금이나 불우이웃 돕기는 대통령의 통치자금이라는 것입니까.
▲노피고인=예,잘 말씀하셨습니다.
▲김재판장=취임뒤 잠시동안 기업으로부터 돈을 전혀 받지 않았는데 어떤 계기로 돈을 받게 됐습니까.
▲노피고인=대통령으로 있게 되면 「왜 한번 불러주지 않느냐」는 표시가 많이 들어옵니다.여러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김재판장=돈을 받는 행위에 대해 법률적 자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노피고인=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김재판장=누구한테 받았습니까.
▲노피고인=아마 참모들에게 받았을 것입니다.관례는 어쩔수 없다는 내용의 자문이었습니다.
▲김재판장=돈을 받는 것이 관례라고 했는데 무엇이 관례고 어디까지가 관례입니까.
▲노피고인=과거 내 전임자와 그 전임자로부터 내려온 게 관례입니다.말하자면 문화겠죠.
▲김재판장=관례라서 돈을 받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나요.
▲노피고인=재판장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당시 대통령 개인의 처신 등을 살펴보면 가져오라는 인상을 하나도 주지 않았습니다.
▲김재판장=기업의 규모 등을 고려해서 금액의 다과를 정했습니까.
▲노피고인=기업인들에게 예외 없이 「헌납하면 어려움이 없는가」라고 묻고 「어렵다」고 대답하면 돈을 안받았습니다.
▲김재판장=기업인들이 영수증 한 쪽 받지 않고 돌아가서 장부정리나 세금관계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습니까.
▲노피고인=요즘은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재판장=퇴임 때 잔액이 많이 남은 이유가 뭡니까.
▲노피고인=그 얘기는 지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김재판장=(목소리를 높여)통치자금으로 받은 것이라면 재직중에 다 쓰든지,퇴임 때 나라에 내놓는게 옳지 않습니까.
▲노피고인=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김재판장=나라에 내놓는 시기를 놓쳤다고 진술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노피고인=당시 중립내각 등 정치상황이 갑작스레 바뀌어 돈이 예상외로 많이 남아 고민을 했습니다.그렇지만 통일문제,북방정책 등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건전한 보수세력을 양성하는데 쓸 계획도 있었습니다.
▲김재판장=(목소리를 높여)지금 진술을 모두 검토해도 개인적으로 공익을 위해 쓴다는 것이 아닙니까.통치자금이라면 내놓아야지,나라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노피고인=원칙적인 말씀입니다.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개인이 아닌 공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재판장=그러면 지금도 통일자금 등으로 쓰면 통치자금이라는 겁니까.
▲노피고인=그런 생각은 아닙니다.
▲김재판장=기업인들에게 묻겠습니다.국책사업 수주대가등 특정 명목은 아니지만 노피고인에게 돈을 줄 때 핍박을 받지 않거나 세제관계에서 엄격한 적용을 받지 않는 등의 여러 의미들이 포괄적으로 가미됐습니까.아니라고 생각하는 피고인은 손을 들어보세요.
▲이건희피고인=피해만 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장진호피고인=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검찰에서 물어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박은호기자>
1996-01-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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