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사 죽음맞이… 새삼 옷깃 여민다(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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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8-16 00:00
입력 1995-08-16 00:00
어떻게들 죽는가.아나톨 프랑스같이 어머니를 부르다 가기도 하고 베토벤같이 『희극은 안 끝났어』하면서 눈을 감기도 한다.하이네는 종이와 펜을 찾으면서 갔고 발자크는 그의 작품속 의사인 비앙숑을 불러대라면서 저항하다가 간다.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1세는 먹을 생각을 못 버린다.『오늘밤에는 하이데스한테 가서 저녁을 먹어야지』 했다지 않던가.우리의 사육신 성삼문이 『황천에는 머무를곳 없으니 오늘밤에는 뉘집에서 잘꼬』하고 읊었던 사세시와는 대조가 된다할까.
썩은내 나는 죽음과 향내나는 죽음도 있다.서양의 걸주 네로는 굴속에서 죽어야하게 되었을때 이빨 마주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한다.반정소식에 승지의 손을 잡고 다리 아랫소리로 부들부들 떨었다는 연산군과 다를게 없다.그와함께 앙글앙글 놀아났던 장녹수가 군기사 앞뜰에서 목베였을때 그국부에 대고 던진 장안사람들의 돌멩이는 무더기로 쌓였다.그런게 다 썩은내 나는 죽음.남에게 몰강스럽게 군 사람이었을수록 제죽음 앞에서는 대체로 군단지러워지는 법이다.
『충실하게 산 하루가 상쾌한 잠을 자게 할수 있듯이 여낙낙하고 떳떳하게 산 일생은 평안한 죽음을 맞게 한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한다.바로 그게 향내나는 죽음.「은계필록」(저자불명)에 의할때 계곡 장유,수천 정광필등은 숨을 거둘때 그 지붕위로 무지개가 뻗쳤다 한다.그 무지개는 어쩌면 하늘의 향내를 더불었던 것인지 모른다.
알려져온 얘기이기는 하지만 얼마전 발견된 안중근의사 사형상황기록은 새삼스럽게 우리들 마음을 숙연하게 한바 있다.죽음앞에서 그는 끝까지 의연했다.「동양평화 만세」를 못 부르게 하자 그옛날의 성자들같이 기도를 드린 끝에 죽음을 맞는다.사약을 받아들고서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바라보나니/훤히 비춰주리 이내 일편단심을』하고 읊었던(김육의 「해동명신록」) 정암 조광조의 나볏하고 향내나는 죽음맞이를 생각케 하잖은가.
죽음앞에 의젓할수 있는 자세는 다빈치의 말 그대로 이승의 삶이 곱고 바르고 의연한 것일때 가능한 것 아닐는지.주검위에 향내가 덮는 삶들을 살고지고.
1995-08-1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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