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기자
수정 1995-07-28 00:00
입력 1995-07-28 00:00
자동차 1천만대의 비전은 무엇인가.가구당 1대이상 자동차를 보유하게 되었다는 발전인가.사무용 승용차만이 아니라 장보기용 승용차도 갖게 되었다는 즐거움인가.가족 수대로 자동차를 가질 수도 있다는 희망인가.아마도 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서울로만 보아서도 단 2백만대에 종일 러시아워와 오존 경보현상에 부딪혀있다.그러니 이제는 자동차 대수나 증가속도 같은 것에서 화제를 찾는 일도 벗어나 보다 본질적인 자동차문명의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된것이다.
서울 경우는 시급히 근본적 교통책을 세워야 한다.전체보다는 미시적 항목들 하나씩을 수시로 고치는 난맥상만 보여온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최근에도 주행세를 검토하자,택시요금을 10% 올려야겠다,버스전용차선에 택시도 다니게 해야겠다,수도권전철 요금체계를 전면개편하겠다 등의 사안들이 나와 있으나 이 전체가 어떻게 연계되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그러니 임기응변책이라는 인상만 짙어진다.
문제해결의 기본방향을 분명히 하고 변함이 없어야 작은 정책들도 선택이 쉬워진다.예컨대 자동차 억제인가,차사용 억제인가.차도위주 소통책인가,인도위주 소통책인가.도시 대기오염 해소는 실질적 목표인가 아닌가.결국 모든 나라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대중교통 중심체제를 만들 것인가 아닌가를 이제는 확고하게 정해야 한다.
사용자도 마찬가지.올해만 해도 교통범칙금을 10% 올렸으나 과속 42%,음주운전 17% 증가라는 통계만 만들어내는 운전자 습관으로는 1천만대 시대를 살 자격 자체가 없는 것인지 모른다.<이중한 논설위원>
1995-07-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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