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원하던 워크맨 사왔는데…”/실종여학생 3가족의 애타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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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7-05 00:00
입력 1995-07-05 00:00
『수경 화이팅! 6월 28일 아빠가』
삼풍백화점 붕괴더미 속에 갇혀 엿새째 소식이 끊긴 권수경양(18·반포고3)의 책상에는 사고 전날 아버지가 전해준 메모만 쓸쓸하게 붙어있다.
못다핀 어린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사체가 잇따라 발굴된 4일에도 생존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사고주변을 헤매는 수경양을 비롯한 8명의 실종 여중고생 부모의 심정은 안타깝기만하다.
수경양의 아버지 권기주씨(46)는 사고전날 입시준비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딸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싶어 평소 갖고 싶어하던 워크맨을 구입,딸의 책상에 갖다놓으며 사랑의 메모를 남겼다.
하지만 자정이 넘도록 집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새벽에야 돌아온 딸은 이튿날 아침일찍 등교,아버지의 선물을 써보지 못한채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어머니 김미옥씨(44·풀무원식품소장)도 사고가 나던날 아침 『엄마 힘드시니까 도시락은 필요없어요』라며 맞벌이하는 어머니를 생각해주던 딸의모습을 지우지 못했다.
『직장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를 편하게 해준다』고 수경양은 도시락을 싸가는 대신 학교 근처에서 분식으로 매일 저녁을 때웠다.
이날도 수경양은 하오 5시45분쯤 삼풍백화점 A동 지하1층 스낵바에서 학교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입시얘기를 나누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밤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서 하오 5시30분부터 6시까지 허용된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해외파견 근무를 한 아버지를 따라 외국생활을 하다 지난 91년 귀국한 권양은 친구들 사이에 「대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해마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꾸준히 하루에 2∼3통씩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올 정도였다.
어머니 김씨는 『도시락을 준비해 보냈더라면 학교에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수경이를 꼭 보살피고 계시다고 믿지만 만약 죽었다면 고통 없이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흐느꼈다.
서울 선화예고 1학년 우정림양(16)은 사고당일인 29일 상오수업밖에 없어 일찍 돌아와 어머니 김현자씨(48)와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 위해 삼풍백화점에 들렀다 소식이 끊겼다.
치과의사인 아버지 우건희씨(48)는 『지금도 막내딸과 집사람이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있다는 생각이 들지않는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담임인 선화예고 1학년 4반 이재숙 교사(47·여·수학)는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있는 정림이는 공부도 잘했지만 밝고 깨끗한,너무 착한 아이였다』고 울먹였다.
수도여고 1학년 조미경양(17)은 사고 한달전부터 지하1층 패스트푸드점인 웬디스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건물 잔해에 깔렸다.
평소 효심이 지극했던 미경양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아빠의 삐삐를 새것으로 바꿔주려고 일했던 것으로 드러나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주병철·김성수 기자>
1995-07-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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