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레 은행(외언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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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6-02 00:00
입력 1995-06-02 00:00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슬픈 부산정거장…』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50년대의 「뽕짝」가요로 해서 장터는 더욱 시끌벅적하다.

노래소리는 「○○은행」이란 마크가 선명한 조그만 손수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젊은이가 손수레를 천천히 끌며 지나가는 동안 여러 상점에서 전대를 앞에 두른 주인 아저씨·아주머니들이 예금통장을 들고 나온다.좌판을 벌이고 있던 할머니가 은행직원인 넥타이청년에게 『노래소리가 나서 웬 엿장수가 지나가나 했지…』라며 농을 건네고 청년은 그냥 씩 웃는다.동전으로 바꿔 달라며 만원짜리 지폐를 내미는 사람도 있다.

노래를 들려주며 고객유치에 나선 이동식의 손수레은행 예금창구가 연출하는 한토막 장터모습이다.은행이 발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서는 은행끼리의 경쟁에서 이길수 없기 때문이다.국민 대다수가 못살아 저축여력이 없고 은행문턱이 높았던 지난날엔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을 은행의 업무스타일이다.

통장배달제도라는 것도 생긴다.전화만 걸면예금잔액이 없는 「0원 통장」을 개설해주고 은행직원이 직접 고객을 방문,그자리에서 거래신청서등을 작성한뒤 통장을 지급하는 것으로 국민은행이 오는 9일부터 시행할 것으로 전해진다.통장을 새로 만들 경우 반드시 은행창구에 나가서 단돈 1백원이라도 내야 했던 불편함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은행은 변할수밖에 없다.오랜 관치의 틀속에서 잊고 있었던 서비스정신을 되살리고 활기차게 키워야만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더욱이 우리 금융산업은 미국등 다른 나라들로부터 계속 거센 개방압력을 받고 있으므로 하루빨리 새로운 경영기법과 생존 전략들을 많이 개발해서 경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손수레 예금 창구가 금융산업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것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우홍제 논설위원>
1995-06-0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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