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속 유족들의 분노/박찬구 사회부 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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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4-30 00:00
입력 1995-04-30 00:00
◎“사후처리 미흡”… 2중 설움 폭발

『아이고 석아…』

어이없는 참사를 빚은 대구도시가스 폭발사고 이틀째인 29일 대구보훈병원에는 밤새 통곡한 유족들이 이날 아침 빈소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앞에 주저앉아 불귀의 객이 돼버린 가족의 영정을 힘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영안실이 턱없이 좁아 앞마당에 20여개의 천막을 치고 밤을 꼬박 샌 유가족들은 아직도 엄청난 비극이 믿기지 않는 듯 도리질치고 있었다.

이틀째 슬픔을 삭이느라 기진맥진해진 이들은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한탄을 털어놓을 뿐이었다.

아들을 찾으며 몸부림치는 어머니,지아비를 잃은 여인,손자의 신발을 쥐고 눈물만 흘리는 할아버지­이들의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 이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영안실에는 기가 막힌 죽음의 사연들이 가득 차 있었다.

『몇분만 늦게 갔어도 살 수 있었는데…』『버스가 조금만 일찍 출발했다면…』

그러나 유가족들의 애끊는 몸부림을 누구도 속시원히 받아줄 수 없었다.

『사고대책본부가 복구에만 신경쓸뿐 유가족들의 처지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30대남자의 절규에 합동분향소는 온통 울음바다로 돌변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당국은 사건의 파장을 줄이는 데만 급급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이번만큼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정치인들의 방문 때문에 구조활동이 늦어지고 있다더라』는 등 격렬한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합동분향소의 울부짖음이 순식간에 터무니없는 사고를 당한 분노로 이어졌다.

사각형 반듯한 영정에서 조용히 미소짓는 어느 나이어린 중학생의 꿈이 차가운 영안실 한 귀퉁이에서 애절한 향냄새와 함께 스러져가고 있었다.
1995-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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