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생활인 모델/새 경제이론 속속 등장(현장 세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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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1-23 00:00
입력 1995-01-23 00:00
딱딱한 경제학 책 속의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사랑도 눈물도 갈등도 없는 시계장치같은 인간이다.경제학적 용어로 말하면 「합리적 경제인」이다.그러나 구체적인 생활세계에서 만나는 인간은 이와는 딴판이다.합리적 선택같은 것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덜 떨어진 사람이 대다수다.최근 들어 이런 「현실적 생활인」을 모델로 삼은 경제이론이 속속 등장해 경제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 새 이론들은 과거의 경제이론이 합리성을 너무 좁게 해석해 인간을 마치 돈버는 일에만 몰두하도록 프로그램된 로봇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하고 이 합리성 개념을 전면적으로 재정의 하거나 크게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최근 실험심리학 등의 성과에 힘입어 이 새 이론들은 「사람이 실제생활에서 어떻게 선택행위를 하는가」를 연구하는 데 유혹·공포·중독·무지·편견 따위 인간적 약점을 끌어들인다.
○실험심리학 힘입어
대표적인 이론이 「화폐환상」론이다.화폐환상이란 명목상의 화폐가치를 실질적인 화폐가치와 똑같다고 오인하는 것이다.화폐임금이 10% 인상됨과 동시에 물가가 10% 올랐다면 실질임금 인상은 없는데도 임금이 10% 올랐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화폐환상에 빠진 것이다.전통경제학은 합리적 경제인의 관점에서 화폐환상은 없다고 가정했으나 새 이론은 실제 선택행위에서 화폐환상이 매우 널리 퍼져 있다고 본다.
이 것은 몇 가지 실험에서 증명됐다.먼저 실질임금의 하락을 견디는 방법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사람들은 명목적인 화폐임금이 조금 늘고 이보다 더 많이 화폐지출이 늘어나는 상황를 가장 선호했으며 화폐임금의 변동없이 화폐지출이 조금 늘어나는 상황을 그 다음으로 선호했다.가장 꺼려하는 상황은 화폐지출의 변동 없이 임금이 깎이는 상황이었다.
화폐환상은 실질임금이 증가하는 경우에도 아주 명백했다.대다수 사람들은 화폐지출이 같은 크기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일단은 명목임금이 많이 오르기를 원했다.「합리적이지도못하게」 사람들은 화폐임금 상승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것이다.이런 행태는 예를 들어 인플레를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 시행을 매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정책시행에 장애물
또 다른 이론은 「행동경제학」분야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합리적 기대」가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합리적 기대 가설은 사람들이 경제전반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하고 행동한다는 가설이다.이 주장은 다시 말하면,사람들이 빈틈없는 연역적 추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통한다.이 가정에 따르면 합리적 기대론자 두 사람이 장기를 둘 경우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한두 시간동안 가만히 지켜만 보다가 마침내 한쪽이 패배를 선언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현실은 전혀 다르다.사람들은 장기를 둘때 실착를 거듭하고 수를 잘못 읽고 빗나간 예측을 한다.
최근의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행위도 이와 마찬가지며 이는 주식시장에서의 선택행위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고 말한다.주식시장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험법칙을 갖고 있으며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르게 예상한다.동시에 사람들은 장기평균치나 통계적 확률보다는 최근의 데이터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또 정보를 얻고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과 어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 값싸고 안전하다고 판단하게 된다.이런 편견과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한곳에 몰려들고 추세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다.이런 사실은 주식시장이 왜 우세한 분위기에 의해 지배되며,거품이 생겨나 마구 커졌다가 급작스레 꺼지는가를 설명해준다.
○절제의 어려움 연구
새 경제이론은 또 과거의 경제학이 거의 무시해온 일상생활의 다른 면,즉 유혹의 힘과 절제의 어려움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이것은 이를테면 「저축행동에 관한 표준이론」을 좀더 현실화하는데 도움을 준다.표준이론은 사람들이 일생에 걸쳐 그들의 소득을 적절히 분배하기 위해 초년에는 대부를 받고 중년에는 저축하고 퇴직후에는 저축한 돈으로 살아간다고 가정한다.그러나 「유혹의 경제학」에 따르면 이런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대다수 사람들은 저축을 더 하겠다는 생각은 있으면서도 돈 좀 생겼다 싶으면 쓰고자하는 욕망에 쉽게 휘말려버린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연금저축이라거나 주택융자금상환처럼 매월 일정액을 강제로 떼어내는 방식으로만 저축을 한다. 「공돈」을 저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고명섭기자>
1995-01-2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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