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연주… 포고렐리치의 쇼팽(객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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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30 00:00
입력 1994-11-30 00:00
예전의 모난 인상은 30대 후반이 된 이제 각이 다 깎여 있었지만 이성과 감정의 양극을 쉴사이 없이 오가는 그의 음악은 예나 다름없었다.
포고렐리치는 이날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쇼팽의 스케르초 4곡을 연주했다.그는 「할 수 있는 한 극단적으로」라는 곡 해석의 원칙을 갖고 있는 듯 했다.예를 들어 악보에 씌어있는 「여리게」는 「더욱 여리게」,「강하게」는 「엄청나게 강하게」가 된다.포고렐리치는 이 원칙을 충실하게 지켜냄으로써 성공적으로 「전람회의 그림」을 그려냈다.
포고렐리치의 극단주의는 그러나 이성적이고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그는 쇼팽에서 감성표현에서도 자신이 극단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어떤 사람은 그를 두고 「하이페츠 스타일」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차가운 이성을 초인적인 기교에 담아내는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와 같은 계열이라는 것이다.그러나 포고렐리치의 쇼팽에서는 하이페츠만큼 냉기가 감돌기도 하지만 감성적인 대목에서는 19세기 낭만주의 전성기의 피아니스트를 능가하는 것 같았다.이것이 그의 매력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이 그가 낙선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베트남 출신의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이 떠올랐다.당시 심사위원이던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포고렐리치가 결선에서 탈락하자 심사위원직을 내던져 버렸다.이를 계기로 포고렐리치는 당 타이손보다 훨씬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쇼팽은 동양인인 당 타이손에게는 목적지였을 것이다.당 타이손은 훌륭히 그 목적을 달성했다.그러나 서양인인 포고렐리치에게는 새로운 해석을 위한 출발점이었던 셈이다.아르헤리치와 서양의 음악애호가들은 전통적인 쇼팽보다 새로운 쇼팽을 위한 가능성에 점수를 더 주었던 것이다.
이날 포고렐리치의 인상적인 연주가 끝난뒤 청중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이어졌다.그러나 그 환호가 「서양음악에 대한 동양인의 벽」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소리인 것 같아 우울했다.왜냐하면 우리는 당 타이손과 같은 동양사람이기 때문이다.<서동철기자>
1994-11-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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