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와 식물자원/김태욱(일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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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13 00:00
입력 1994-11-13 00:00
신토불이­오늘날 이 단어 만큼 널리 쓰이는 말은 없다.몸과 흙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곧 우리 몸에는 우리 땅에서 자란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나아가 우리의 것,우리의 토종농산물에 대한 관심과 호응도 아주 높아가고 있다.우리 것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하고,사라져가는 귀중한 생물종을 찾아내고 보호하는데 온 사회가 함께하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토종이라 부르는 것들(토종고추 토종감자 토종파 토종마늘 토종고구마)을 살펴보면 과거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것들이 대부분임을 알수 있다.고추는 기록상 1614년 이전에 일본을 거쳐 도래하였으며 고구마는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조엄이 도입하였다.문익점 선생이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목화씨는 우리 민중을 추위에서 해방시켜준 아주 귀한 자원이었다.꽃중의 여왕 장미와 순결의 상징인 백합 역시 외래 식물종이다.그러나 이 아름다운 꽃들을 모두 제거하고 대신에 우리의 토종장미인 해당화와 토종백합인 나리꽃만을 심자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또한 우리의 식탁을 장식하는방울토마토나 파슬리,양상치등 싱싱하고 독특한 맛을 내는 야채를 외국산이라고 거부할 수는 없다.

영국의 식물학자 어네스트 윌슨은 외국의 다양하고 우수한 식물종을 수집,탐험하여 식물자원이 빈약한 모국에 안겨줌으로써 국가적 영웅으로 숭배받고 있다.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모든 외교관들에게 외국을 방문하면 그곳에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씨앗은 모두 본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는데 이 당시 벤저민 프랭클린은 런던으로부터 대두를 도입하였다.일찍이 식물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처사이다.

식물은 관상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산업용 원료가 된다.건축자재·염료·향료·식료품·펄프재·섬유재 등 식물 한종이 가진 자원가치는 무궁무진하며 따라서 많은 식물자원을 확보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잠재자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보고 지나치는 식물하나에서 인간을 암으로부터 혹은 에이즈로부터 구제해줄 특효약이 나올 수도 있다.은행잎으로부터 추출한 혈액순환개선제나 주목나무의 줄기에서 추출한 항암제 탁솔은 식물의 잠재력에 있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세계는 식물종 자체 뿐만 아니라 식물의 유전자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우리가 실제 농산물이라고 말하는 소위 재배작물들을 꼽아보면 우선 벼·밀·보리·무·배추·콩·옥수수·파등의 몇가지가 떠오른다.사실 재배하는 작물의 종수 자체도 식물 전체 종수에 비하면 아주 적지만 이들의 품종도 육종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몇가지의 것으로 제한된다.소위 말하는 높은 생산성을 지향하는 단작 농업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국립아카데미에서 발표한 주요작물의 유전적 취약성에 관한 논문을 보면 현대의 단작 농법에 대한 위험성을 잘 읽을 수 있다.즉 인위적으로 육종된 작물들은 병이나 충에 의해 대규모로 공격 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과학자들은 매번 새로운 신품종을 개발하지만 몇 세대가지 못해 새로운 질병과 해충이 출현한다.

그때마다 과학자들은 자연 그 자체에서 야생의 천적들과 싸워가면서 살아가는 야생의 식물종을 찾아내는데 이들이야 말로 자연상태에서 모든 위험을 극복해낸유전적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현재 세계는 이러한 야생종의 유전자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찍이 러시아의 전설적인 유전학자이며 식물 재배연구가였던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바빌로프연구소는 온세계의 식물들이나 종자들을 유전상 원산지로부터 수집하여 소장하였다.2차 대전 당시 나치군에 점령 당해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을때 이 연구소의 과학자들도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볍씨부대 옆에서 그냥 굶어 죽었다.세계적으로 매년 바빌로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탄생기념사업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과학자에 대한 당연한 예우이다.

우리의 문익점 선생이나 미국의 제퍼슨,영국의 윌슨,러시아의 바빌로프는 모두 식물의 자원적 가치를 알고 이를 확보하려 했던 선각자들이다.지금 우리 사회에서 번지고 있는 우리것 찾기,토종살리기 등도 중요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새로운 종의 확보도 중요하다.우리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외국산 종이나 외국으로부터의 종의 도입이 거부당하거나 배제당해서는 안된다.외국종 도입이나 육성방안이 국가 차원에서 적극 마련돼야 하며 식물의 잠재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이나 연구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그리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우리 것이 가질 수 있는 취약성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지금은 바야흐로 식물자원전쟁 시대이다.<서울대교수·산림자원학>
1994-11-1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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