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인간의 땅」을 보고(TV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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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0-29 00:00
입력 1994-10-29 00:00
KBS 2개 채널의 드라마가운데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 「인간의 땅」(박병우 극본,심현우 연출)이다.
지난 12일 첫 방송된 이 드라마는 독립제작사인 (주)제일영상이 제작한 것으로 일제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대사 1백년을 헤쳐온 김금단·실단 자매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소재 자체만도 어떠한 픽션보다도 드라마틱한데다 빼어난 미모의 염정아와 옥소리가 주인공 금단과 실단역을 맡았으며 노년기에 접어든 두 자매역을 60년대 은막의 스타 최지희와 MBC 전속으로 활동해온 인기 탤런트 김혜자가 등장하는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를 제작사측은 작품성과 오락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연출방향과 탄탄한 극적 전개에 있다고 한다.하지만 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드라마는 「선정성」이라는 극약을 사용,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려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숯을 굽던 금단과 실단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폭포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이를본 일본군 헌병대장이 실단을 물에서 불러내 겁탈하려는 찰나 금단이 내려친 몽둥이에 헌병대장이 죽고 그 사건 때문에 두 자매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된다.
멀리서 흐릿하게 잡긴 했지만 여주인공들의 벗은 몸이 상반신,뒷모습 차례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헌병대장이 겁탈하는 장면이 반복됐다.금단과 실단의 거짓증언으로 인해 이 장면은 드라마 5회분의 범행 재연까지 포함해서 매회 되풀이 등장했다.
범행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금단이 살인을 한것으로 밝혀져 금단과 실단은 일본군에게 잡혀간다.감옥에서 일본군들이 이들 자매를 차례로 겁탈하는 장면은 흡사 저질 방화를 보는 것같아 당혹스러웠다.
드라마 전개상 필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가족이 둘러앉은 안방에 이같은 선정적인 장면을 마구 내보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체면이고 공영성이고 다 팽개치고 시청률만 높으면 된다는 한국방송공사의 방송철학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선정성도 적당하면 작품성을 높여줄 수 있지만 지나치면 드라마의 전개가 작위적으로 흐르게 하고 품위를 떨어트린다.
제일영상이 열악한 제작환경에서도 이같은 대작을 만들어 내고 있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선정성에 승부를 거는 것보다는 논리적인 극적 구성과 연출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일제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유행하는 발라드풍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든가 밤과 낮이 마구 뒤섞인 시간전개,어설픈 세트와 분장 등은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해결될 수 있으며 작품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함혜리기자>
1994-10-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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