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부실공사/강한섭(굄돌)
기자
수정 1994-10-25 00:00
입력 1994-10-25 00:00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저지르고 있는 「날림」 「졸속」 「적당주의」 그리고 「무관심」을 생각해 본다.도대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능력이 허용하지 않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너무 많이 강의하고 잘 모르는 것도 전문가인양 쓰고 있고 「뭔가 보여 줄 것」도 변변치 않으면서 방송에 나가 주접을 떨고 있다.게다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슨 심사위원과 자문위원이라는 허명을 몇개씩이나 달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강의날이 휴일과 겹치면 학생들 보다도 더 좋아하는가 하면 강의시간도 다 채우지 않고 앞과 뒤로 적당히 잘라먹고도 끄떡없게 되었다.어디 그뿐이랴. 학교에 전임자리를 얻고부터는 본업인 영화평론은 부업이 되어버렸다.그래서 제대로 된 평론은 쓸 생각도 못하면서도 평론가라는 직함을 고수하고 있다.평론은 점점 잡문이 되고 있고 논문은 교육부가 정한 의무편수만 간신히 채우고 있다.한마디로 말해 「한심한」인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웬 불만과 욕심은 그리도 많은지 입에서 나오는 말과 쓰는 글의 논조는 항상 지고한 문명비평가를 방불케 한다.자신이 한국 영화교육과 영화문화의 걸림돌과 짐이 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기관을 헐뜯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느끼고 묘한 쾌락까지도 즐기고 있다.
성수대교는 이제 수리되고 있지만 과부하와 허영으로 허물어져 가고 있는 필자 자신의 보수 작업은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이런 반성문이 전기가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내일 또다시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자기 위안의 구호를 은밀히 내걸지나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서울예전교수·영화평론가>
1994-10-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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