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호칭은 합하”/운현궁 복원중 상량문 2장 발견
수정 1994-06-21 00:00
입력 1994-06-21 00:00
흥선대원군 지위는 「백료들의 열위 위에 으뜸이다」라고 밝힌 운현궁 상량문이 발견됐다.
서울시는 지난 6월초 대원군의 사저였던 운현궁의 복원공사중 사랑채인 노안당과 안채인 이로당에서 각각 발견된 상량문을 20일 공개했다.
이 상량문은 운현궁의 건축연대는 물론 대원군의 구체적인 지위와 대원군시대의 역사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개된 노안당 상량문은 가로 1백50㎝ 세로 97㎝의 중국산 붉은색 비단위에 김이해서체로 29행 6백61글자가,이로당의 상량문은 가로 1백65㎝ 세로39.5㎝의 고급 닥나무 종이위에 예서체로 6백63글자가 쓰여져 있다.
노안당과 이로당의 상량문을 해석한 서울대 이태진교수(국사학)는 『노안당의 상량문에서 대원군의 지위를 「관백료열위지상」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혀 고종초 10년간 정치를 주도했지만 왕조실록등 정사의 기록은 대부분 국왕의 이름으로 행해져 그동안 파악하기 어려웠던 대원군의 실제지위에 대한 문제점이 해결됐다』고 밝혔다.또 이들 상량문은 지금까지 추정으로만 알려진 운현궁의 건축연대를 「노안당의 상량일은 고종즉위 4개월째인 원년(1864) 3월23일로,이로당의 상량일은 고종6년(1869)」이라고 정확히 밝혀 운현궁이 그동안 「고종이 출생해 12세까지 성장한 곳」이라고 전해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고종이 즉위하기전 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함께 이날 공개된 상량문에는 대원군의 집안내력과 인품·중국 고대 고사등을 인용,고종이 왕위 계승자로 지명된 배경을 서술하는등 즉위당위성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이밖에도 운현궁 상량문은 재위중인 왕의 생가이자 정사의 주체인 대원군의 거처를 위해 특별제작,크기와 재료는 물론 글자수·필서등이 보통 사대부집 상량문과는 크게 달라 문화재적 가치로서도 귀중한 재료가 될 것으로 이교수는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한 운현궁은 사적 제257호로 현재 지붕및 벽체 해체작업이 한창이며 95년 12월 복원공사를 마무리한 뒤 대원군의 유품전시등 생활상 재현·전통예절 교육장등으로 일반에 공개된다.<한강우기자>
1994-06-2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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