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혁명·소비자 운동의 선구/켈리/네이더/전기물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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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3-29 00:00
입력 1994-03-29 00:00
◎켈리/녹색당 창당… “반핵·환경운동의 잔다크”/네이더/소비자·납세자의 권리지키는데 앞장

페트라 켈리와 랄프 네이더.한때 국내 매스컴에서도 각광을 받았던 이 이름들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듯 하다.

그러나 이들이 씨뿌리고 꽃피운 녹색운동과 소비자운동은 현재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시민운동 가운데 대표적인 두 갈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전기물인「녹색혁명가 페트라 켈리」(나남 펴냄)와「「달려오는 소비자 대통령」(독자와 함께 간)2권이 최근 나란히 국내에 선보였다.

이들의 활약상을 소개한 책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본격적인 전기물로는 이번 출간이 처음이다.

페트라 켈리는 흔히「반핵·환경운동의 잔다크」「불꽃여자」로 불린다.브뤼셀의 유럽공동체에서 사회·환경·보건 관련 일을 하던 그녀는 32살 때인 79년 반핵·환경보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세계 최초의 환경정당인 녹색당을 서독에서 창당했다.

공동대표중의 한사람인 켈리는 이듬해 대변인을 겸직한 뒤로 일에 대한 열정과 폭발적인 추진력을 보여매스컴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환경운동 시위현장에서 갈색머리를 휘날리며 열변을 토하는 켈리의 모습은 곧 반핵·환경운동의 상징처럼 떠올랐고 그녀를 한낱「몽상가」「착한 철부지」쯤으로 여기던 매스컴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녹색당은 드디어 83년 서독 연방의회(국회)에 진출해 켈리는 이후 7년여동안 연방의원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꿈을 펼친다.

90년「의원연임 제한」이란 당의 규정에 따라 후보공천에서 탈락한 그녀는 TV 환경프로그램의 진행을 맡는등 나름대로 운동을 계속한다.그녀의 명성은 많이 쇠퇴한 것처럼 보였다.

92년 10월19일 그녀는 오랜 동지이자 연인인 게르트 바스티안과 함께 숨진채 발견됐다.45년의 길지 않은 생애였다.

한때 그녀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던 보수지「스피겔」은 그녀의 타계후「역사를 바꿔놓은 시민운동의 핵심」「빌리 브란트와 함께 독일이 낳은 20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평가했다.

소비자운동의 창시자 랄프 네이더의 활동은 65년「어떤 속도에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책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름없는 변호사였던 네이더는 이 책에서「미국 자동차사고의 주원인은 운전자의 부주의보다 자동차의 구조·설계 잘못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뒤 자동차회사 GM을「대규모절도단」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GM은 갖은 방법으로 그를 회유·협박했으나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민 사이에「소비자의 권익을 스스로 찾자」는 소비자운동이 불붙었고 자원자로 구성된「네이더돌격대」는 미국의 기업·정부기구등 모든 공적인 조직에서 소비자·납세자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감시하고 잘못을 고치도록 요구했다.

페트라 켈리와 랄프 네이더는 둘다 평범한 시민이었다.그러나 무엇이 문제인가를 깨달은 뒤에는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을 이끌며 그 잘못을 고치려고 애써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이용원기자>
1994-03-2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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