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사과로 쌀난국 정면돌파/김영삼대통령 담화에 담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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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12-10 00:00
입력 1993-12-10 00:00
김영삼대통령의 9일 담화문 발표는 난국을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그의 독특한 정치스타일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김대통령은 이날 담화문에서 5번에 걸쳐 「사과」와 「죄송」이란 표현을 사용했다.의례적으로 사과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라 『책임을 통감하면서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식이다.김대통령은 이같은 솔직한 사과를 통해 쌀 개방과 관련된 정치·도덕적 곤경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우선 자신의 행동을 자유롭게 한 뒤 구체적 대책을 수립하고 후유증을 수습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 담화문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하더라도 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찬·반양론의 정쟁화 반대,정부대책,국민에 대한 호소의 5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러나 담화문의 주조는 역시 대통령으로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개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사과하고 이해시키려는 쪽이었다.정부대책등은 의지만을 피력하고 구체적인 대책은 앞으로 세워나가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쌀 개방과 관련한 논쟁은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정치·도덕적 측면의 논란과 실제로 농촌이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경제적 이유등 두가지를 기둥으로 해 전개돼 왔다.김대통령이 이날 더 머뭇거리지 않고 솔직히 사과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앞으로 쌀정국은 경제적 대응책을 둘러싼 논란으로 단일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물론 야당이나 사회단체등이 계속해 쌀 개방을 정치문제화하려 들겠지만 대통령의 입장은 예전보다 한결 자유로워질 것임이 틀림 없다고 볼수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쌀개방과 관련한 책임을 내각등에 전가하지 않고 자신이 모두 짊어지는 자세를 취했다.허신행농림수산부장관이 「쌀개방 수용이 정부의 입장」이란 점을 발표한 이후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의 양해를 구하거나 상황의 불가피성을 이해시키려고 한 것은 이날 담화가 처음이다.여기에 사과까지 함으로써 이날 담화가 정부로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조치가 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의 이같은 처리방식은 정치스타일로서의 「정면대응」이란 점외에 리더십면서도 눈여겨 볼만하다.김대통령은 취임후 『대통령 중심제는 주요문제를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었다.김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그 책임도 대통령이 진다는 점을 몸으로 실천해 보인 셈이다.
청와대의 참모들은 이 문제 때문에 대통령이 사과하도록 건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했었다.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부분은 해야겠지만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는 시각이 더 우세했다.사과를 하더라도 협상이 완전히 매듭된 뒤에 하는 방안이 검토됐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들 수 있고 효과적인 대책수립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책임질 부분은 빨리 지고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점이 지적돼 예상보다 빨리 사과담화문을 발표하게 됐다.이 결정은 8일 아침에 이루어졌고 비서실은 이날 하오 담화문 작성에 들어갔다.
조기수습 결정은 지난 7일밤 이루어진 클린턴대통령과의 쌀 담판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청와대는 갖고 있다.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한만큼 솔직하게 국민에게 이해를 구해도 된다는 생각을 한것 같다.
협상이 완전히 끝난 뒤에 담화문을 발표한다면 협상결과에까지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도 검토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시점에서의 담화문 발표는 쌀 수입개방을 허용키로 했다는 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지만 협상이 완전히 끝난 뒤에는 쌀시장 개방이란 원칙의 문제와 함께 협상조건과 관련한 구체적 협상결과에까지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정부와 자신이 쌀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또한 담화발표가 끝난 뒤 각료전원과 민자당고위인사들을 본관으로 불러 완전한 대책수립을 지시했다.모두가 단합해 대응책 수립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고 당정개편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들에겐 위안이 되는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통령의 외형적 평가나 본관에서의 당부가 당정개편 가능성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곧열리게 돼있는 신경제회의에서 농정대책을 발표한 뒤 당정개편을 할 수도 있고 내년 2월말에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김대통령은 청나라와의 싸움 때 있었던 척화파와 주화파의 예까지 들면서 찬반론 모두가 애국심의 발로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이것이 정쟁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했다.네탓 내탓을 가릴게 아니라 힘을 합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는 호기로 쌀문제를 계속 이용하려 할 것이 뻔해 보인다.국민들이 대통령의 담화내용에 얼마만큼 수긍할지도 두고봐야 할 것 같다.<김영만기자>
1993-12-1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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