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인의 죽음/김정란 시인·상지대교수(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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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11-25 00:00
입력 1993-11-25 00:00
기형도가 테이프를 끊은 이 시인들의 요절의 행렬은 뭔가 대단히 언짢은 여운을 남긴다.그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심장 때문에 오밤중에 숨을 거둔 그 심야극장이라는 곳은 얼마나 지독히 도시적인 공간인가.기형도의 시세계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타락한 도시에서 원초적 신화를 복원해 내는 것이었다.그러나 그는 도시의 독성을 이겨내지 못했다.그의 영혼은 벌써 도시의 악마성에게 휘둘릴대로 휘둘린 뒤였기 때문이다.이연주도 석영희도 진이정도 모두 도시의 타락한 공기속에서 시를 끌어내던 시인들이었다.그들은 도시의 탁한 공기와 정면대결 했다.그런데 도시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그것은 거대한 야만적인 신상처럼 그들을 발밑에 으깨어 버렸다.내가 싫어? 그러면 네 목숨을 내놔.날 집적대지 말란 말이야.적응하지 못하는 놈은 죽는거지.난 자유인은 싫어.난 노예들이 좋아.시인들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이 인간의 무수한 유형들 중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들이 죽어간다.나는 한없이 우울하다.나의 우울증은 한편에서 너무나 빤하고 경박한 대중문화의 스타들이 랄랄라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더욱더 깊어진다.유치해지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1993-11-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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