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주의」가 문제다/장경애 청주대 물리학교수(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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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11-20 00:00
입력 1993-11-20 00:00
우리는 어려서부터 두서넛,너더댓,대여섯등 걸치기 수를 은연중에 아무런 거부감없이 들어왔고 사용하는 주변에서 성장했다.그런 우리는 아무리 엄격한 검사라도 대강 인맥과 친분으로 또는 어쩔 수 없는 정황으로 조금씩은 타성에 젖어 잘못을 눈감고 넘어갔다. 약간의 눈속임은 우리 사회에서는 때로 융통성으로까지 미화됐다.
내가 학생들한테 가장 과학을 잘 할수있는 방법으로 지적하는 것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을 안해야 된다는 것이다.
현상을 그대로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꾸밈없이 기술하고 글로 기술이 부족할 경우 우리는 수식을 빌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이때 거짓이나 과장은 절대로 피해야만이 올바른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아주 좋아한다.복잡하다는 것은 진실을 보지 못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진실이 확연히 보이는 현상에서 그 현상을 기술하는데 굳이 복잡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흔히 알기는 아는데 잘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 자주 사용한다. 그것은 자신이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알지 못한다는 솔직한 표현보다 자신의 무지를 얼버무리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적당한 것이 좋으나 적당은과학에서는 오차를 불러 일으킨다.사회에서 적당은 병폐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완성된 제품의 품질이 곧 공정과정과 사용된 기기의 정밀도에 근본을 두는 것과 같이 사회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모든 모순은 곧 우리의 눈속임이 근본인 것을 자각할 때가 온 것 같다.
1993-11-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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