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피터팬 증후군/염주영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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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9-04 00:00
입력 1993-09-04 00:00
편지 한통 보내는 일만 봐도 한은이 업무를 얼마만큼 신중을 기해 처리하는지 짐작이 간다.신중해서 나쁠 건 없다.그러나 그 신중함을 뒤집어 보면 한은조직의 비효율성과 활력불재로 비쳐지기도 한다.너무 많은 인재들이 그 역할에 비해 낭비된다는 느낌까지 든다.
한 임원은 한은에서 임원이 되기 위한 제1의 자격요건으로 무병장수를 꼽았다.오랜 외풍에 시달리며 몸조심하느라 기골이 문드러져 가는 금융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한은 사람들 치고 하찮은 일로 필화를 입거나 책임추궁,승진기회 박탈 등의 불이익을 겪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한은체질이 몸에 밴 사람들에게 「몸성히 오래 사는 것」이 최상의 처세술로 여겨질 법한 일이다.
김명호총재는 지난주금융연수원에서 「금융개혁과 금융인의 자세」에 대해 강연했다.강연 말미에 『자율과 책임이 요구되는 금융자유화 시대에 여전히 정부의 규제와 보호 아래 안주하려는 성향이 남아 있다』고 질타했다.이를 극복돼야 할 금융인의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매도했다.「피터팬 증후군」이란 몸은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어린이로서의 대우와 보호를 받고자 하는 심리를 일컫는 말이란 설명도 덧붙였다.그 자리에 모인 시중은행 사람들은 대부분 강연내용이 매우 유익했다고 말했다.한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더욱 유익했을 것이란 반응도 있었다.
한은독립 문제에 대해 한은의 모과장은 은유적인 화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새장 속에 오래 갇혔던 새는 새장 문이 열려도 금방 날지 못한다.날개근육이 퇴화됐기 때문이다.다시 날려면 끊임없는 뜀박질과 곤두박질,날갯짓이 필요하다』
1993-09-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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