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선열 유해봉환 대통령 담화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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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8-06 00:00
입력 1993-08-06 00:00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3·1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세곳(서울·노영·상해)의 임정이 통합된 단일 민주정부입니다.

민주공화정을 표방하고 3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도입,대한민국의 법통을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것을 전문에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새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의 문민적인 정통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오늘 상해 임시정부의 대통령,국무총리,의정원 의장,법무총장,신민회총감등 요인의 유해를 우리땅에 모셔오는 것은 우리나라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밝히는 것이 됩니다.

정부로서는 유해를 모셔다가 국민제전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것을 참으로 뜻깊게 생각하며 커다란 자부와 긍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망국의 한을 품고 풍찬노숙하면서 나라를 찾으려 하셨고 그 과정에서 쓰러져 이국의 땅에 묻혔습니다.

살아 생전에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독립이 다 된 날,본국에 돌아와 영광의 입성식을 한 뒤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은 일찍이 『생전에 한번 정부 정청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문지기』가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노백린군무총장은 『단 한번이라도 정복을 입고 말을 탄 채 조국의 남대문으로 입성』하기를 소원했으나 해방되기 22년전에 돌아가셨다가 60년만에 한줌의 재로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이제 뒤늦게나마 조국에 유해를 모시게 되었으니 저 세상에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조국은 어제의 비운과 좌절을 딛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조국의 땅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봉환하지 못한 87위의 유해 봉환을 위해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그 분들과 그 가족들의 못다한 한을 풀어드리고 항일독립운동의 민족정기를 계승,발양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박은식대통령은 민족의 「통사」를 쓰고 「독립운동의 혈사」를 썼으며 독립을 이룩한 뒤에 광복사를 자신의 손으로 쓰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마지 않더니 1925년에 돌아가시니 최초의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신규식국무총리는 을사조약때 『망국인으로 살기보다는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지사의 길』이라면서 자살을 기도,한쪽 눈이 사시가 되셨습니다.

이분은 유명한 「한국혼」이라는 글에서 『오호라,동포여,치욕을 알리는 피는 선열들이 이미 뿌리고 갔다.치욕을 씻기 위한 피는 우리들이 흘려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던 「애국」이란 말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유해 봉환을 계기로 애국에의 열정이 우리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분들이 애국의 충정 하나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셨듯이 우리 역시 그같은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이 그때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는 오늘의 조국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독립운동이 그때의 애국이라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경제를 살리며 국가기강을 바로 잡아나가고 맡은 바 책무를 다하여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오늘의 애국입니다.

광복절과 10일 제전일을 앞두고 우리 국민 모두는 경건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영령들에 대해 뜨거운 존경과 감사를 바쳐주기를 희망합니다.이기간중에 국민의 자발적인 참배가 줄을 이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우리안에 도사리고 있는 애국심이 뜨겁게 소생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제2의 건국을 이룩해내야 하겠습니다.
1993-08-0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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