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에 대한 지지의 본질/홍기삼 동국대교수·국문학(정경문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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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7-09 00:00
입력 1993-07-09 00:00
◎“쪽박 차도 다시 시작히지” 국민의 의식/도덕적 삶에 대한 열망으로 뭉쳐 분출

이제 여름 장마엔 돌도 자란다는 7월이다.김영삼정부가 출범한지 넉달,정치시간표로 본다면 개혁은 그 시작에 불과한 단계다.그런데 세상은 참으로 많이도 달라졌고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는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에 대해 강제되지 않은 자발적 지지를 그토록 보내게 하는가.우리는 과거 결코 부유하지도 권력을 갖지도 못한 서민들에게서 『우리나라는 쪽박을 차는 한이 있어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이대론 안된다』는 탄식과 분노섞인 푸념을 줄곧 들어왔다.그러한 탄식과 분노의 가장 큰 대상은 총체적 부패였다.한국인들의 의식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도덕적 가치와 순결한 삶에 대한 열망이 잠을 깬 것이다.김영삼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바로 도덕적이고도 순결한 삶에 대한 지지라 할 수 있다.T 카알라일이 『개혁이란 거의 도덕적 개혁을 제하고는 결국은 무효임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개혁의 진정한 가치가물질적인 것의 증진이나 개선보다는 궁극적으로 정신적 가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일각에서는 정부의 개혁작업이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한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이 아니고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의 논리는 언제든 정당하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몇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첫째 지금까지의 개혁은 법과 제도를 넘어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고 둘째 법과 제도가 완비될 때까지 개혁은 보류되어야 하는가 계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또한 개혁의 핵심이 개인과 국가 전체에 대한 깨끗함의 회복에 있다면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최고 지도자의 도덕적 결단이 수시로 요구된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거기에 포함된다.『개혁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법으로 미덕을 규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한 E 기봉의 주장도 법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법만으로 이룩할 수 없는 개혁의 도덕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개혁을 지속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그리고 개혁세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법과 제도의 확립은 긴요하다.그러나 법과 제도만으로 이룩할 수 없는 것,또는 법과 제도를 공정하고도 단호하게 집행하는 의지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몫이다.적어도 대통령책임제의 정치구조 속에서는 그렇다.

가령 청와대 주변을 개방한 것에서 시작하여 안가의 철거,대통령전용의 각종 시설을 국민에게 되돌려준 것,대통령이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군사문화를 대대적으로 청산하고 군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인사조치를 단행한 것,4·19,5·18등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것 등등은 단순히 법과 제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거나 법과 제도의 운용에 있어 지도자의 혁명적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일 수 있다.그리고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순결한 것,바른 것,진실한 것,정직한 것 등을 모두 합친 도덕적 가치에 기초한다.국민의 다수가 세금을 더 내서라도 개혁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극에 달한 부패와 타락의 구렁텅이로부터 우리의 삶을 지키겠다는 결의로 해석할 수 있다.

개혁에 대한 반응 중에서 또 주목되는 것은 어느 정권이든 집권초기에는 모두 큰소리로 개혁을 외쳤으나 결국 유야무야되고 말았다는 일과성개혁론이다.이러한 논리는 과거의 개혁과 오늘의 개혁,과거의 정권과 오늘의 정권을 동일하게 취급하려는 의도의 산물이거나 굳이 오늘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과소평가하고 싶은 심리적 소산인듯 보인다.

팽창해 있는 국민적 지지에 은근히 김을 빼는 이같은 논리는 또 있다.국민은 개혁에 지지를 보내고 있으나 개혁에 참여하지 않는 방관자나 구경꾼이라는 얘기다.

정말 국민은 지금 구경꾼인가.아니다.이런 논리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 된다.국민은 지금 타인의 불행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가학적 만족에 머물러 있는게 아니다.수십년간의 관성을 파괴하면서 거대한 변화를 향해 느릿느릿 전진하는 역사의 흐름속에 우리 국민은 서 있다.그런 국민에게 다시 실망을 줘선 안된다.개혁은 이제 겨우 시작의 새벽을지나고 있는 것이다.
1993-07-0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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