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능력/유혜자 수필가(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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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5-28 00:00
입력 1993-05-28 00:00
도로 한편을 막아놓고 철판을 깐 지하철5호선 공사구간을 지나며 벌써 20년이 지난 1호선 공사때와 비교하면 금석지감이 든다.도로를 온통 파헤치는 복개식공사여서 흙먼지와 소음 때문에 통행이 얼마나 불편했던가.차량수효가 급증한 지금은 굴착식공사여서 흙먼지와 소음대신 공사기간연장으로 교통체증기간도 늘어서 급한 약속때는 가슴에서 쿵쿵 두방망이질 하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동네에는 신축중인 건물이 하나 있다.출근길에 매일매일 달라진 모습에 나와는 관계없는 것일지라도 가슴이 뿌듯해온다.한달 전엔 뾰족한 철근만 세워져 있었는데 며칠후 단단한 벽이 세워졌고 얼마후엔 창틀이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는가 했더니 오늘아침엔 세부적인 장식이 마무리 된 것을 보며 출근했다.

낮동안에 직장에 나가있는 나로서는 그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한번도 본 일이 없다.그래서 밤새 보이지 않는 마술의 손길이 몰래 이뤄놓고 간게 아닌가 하는 동화적인 상상을 갖게 한다.

또한 건물신축지 옆 넓은 빈터엔 초록색 들풀과 들꽃이 난만하여 열어놓은 차창으로 새풋한 향기가 스쳐온다.수십명이 씨뿌리고 가꾼들 저렇게 화사하게 뒤덮을 수 있을까.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을 상상하게 된다.

사람은 흔히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에는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불가사의한 공법으로 기원전에 이뤘다는 피라밋공사는 역사상의 사실로 의심없이 인정하면서도.

우리동네 새건물의 공사는 엄연히 낮에 건축기술자들이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지하철공사도 땅밑에서 사람의 손 대신 기계를 조종하여 이뤄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사람의 육안으로 그것도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만 보이는 시야가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인간의 한계가 있지 않을까.

손바닥만한 라디오와 TV에 직접 사람이 들어있지 않아도 목소리와 얼굴을 대하고 컴퓨터에 온갖 것이 저장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된 과학만능시대.그런 시대에 살면서도 단순한 착각을 할수 있고 그런 상태에서 완성을 꾀하는 것이 인간의 무모함 아닐까.그래서 보이지 않는 능력의 주인공인 신을 찾게 되나보다.
1993-05-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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