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식품 배격 민관공동대응 절실(수입식품 현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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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2-13 00:00
입력 1993-02-13 00:00
◎소비자단체 등서 감시 지원 필요/검역철저·「녹색카드제」 도입 시급/쌀 이외의 곡물 95%가 수입품… 식량자급의지 회복해야

「공포의 수입식품」은 지난 86년 출간된 이후 26판이 넘게 발행된 일본의 베스트셀러다.수입식품의 무분별한 구매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자세히 설명한 이 책이 많이 팔려나간 이유는 단 하나.일본 국민들 대다수가 정부의 지속적인 물밑 홍보와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수입식품의 위해성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지금 정부와 소비자가 똘똘뭉쳐 수입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미국과 EC등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일본정부는 수입식품의 위해여부에 관한 각종 조사자료를 시민단체등에 은밀히 제공한다.이를 토대로 시민단체들은 소비자와 연대해 유해수입식품의 배격운동을 펼쳐 나간다.

여기에는 일본의 정부투자단체나 공영기관들도 단단히 한몫을 거든다.최근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특집으로 「방사선 검사식품 의혹있다」를 방영했다.미국의 플로리다등 4개주에서 수출농산물의 부패와 발효방지를 위한 방사선처리공장이 건립되고 있다는 것이 특집프로의 주내용.쉽게 썩어 수출길이 막혀있던 미국산 딸기가 앞으로 방사선 처리를 할경우 싱싱하게 장기간 수송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중 관심을 끄는 대목은 방사선처리공장 가동의 목적이다.미국의 곡물수출업자들이 한국과 일본,대만등 잠재수요가 큰 동북아시장을 겨냥해 미국산 농산물의 농약시비를 막기위해 공장을 건립한다는 것이 NHK의 주장이다.이와함께 NHK는 방사선처리된 식품 또한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곁들였다.

수입식품에 대한 일본의 이같은 적극적인 대처는 극독성 농약으로 범벅이 된 밀가루와 과일,유통기한표시조차 없는 가공식품들이 쏟아져 들어와도 변변한 대책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실정과는 천양지차이다.

우선 안전한 수입식품의 확보를 위한 정부와 소비자단체간의 역할분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소비자를 위한 시민의 모임」의 송보경부회장은 『정부 단독으로 미국의 수입식품 개방압력에 버티기는 역부족이며 이윤추구에급급한 수입상들에게 수입식품의 안전을 보장받기란 더욱 불안한 현실』이라면서 『정부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소비자단체나 정부출연기관등의 수입식품 감시기능을 적절히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수입식품의 검역·검사시설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낙후돼 있는 것도 문제점.지난해 상반기중 전국 13개 검역소의 수입식품검사는 총4만6천6백96건이었다.이중 눈으로 살피거나 냄새를 맡는 관능검사가 43%,서류심사가 18%나 차지한 반면에 비교적 정확한 이화학검사는 3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식품검역체계의 허점은 전국 검역소의 검사장비와 인원이 태부족인데서 발생한다.식품검사과가 별도로 설치된 부산검역소의 경우 검사인원이 42명정도인데 비해 검사물량은 2만8천여건에 달해 한 사람당 하루평균 3.6건을 맡고있다고 한다.거기다 국내의 검역통관 제도는 첫번째 수입식품만 제대로 통관되면 동일품목은 1년동안 무검사로 들여오게 되어있어 수입업자가 농간을 부릴 가능성이 있다.

중앙대 김성훈산업대학장은 『농림수산부가 담당하고 있는 수입축산물 검역검사의 경우 EC등지에서 크게 말썽을 빚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항생호르몬제 검출이라든지 호주산 쇠고기내의 수은제 농약 검출이 전혀 보고되지 않아 이상하다』며 그만큼 국내의 검역검사 실태가 허술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사부는 연이은 「수입농약밀」사건을 계기로 올해안에 수입식품 검사를 전담할 「국립식품안전성연구원」과 「수입식품 정밀검사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허나 이에 못지않게 「그린카드」제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의견이다.「그린카드」제는 재배과정과 사용된 농약등을 명확하게 기재한 외국농산물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가하는 제도.수입농산물의 「농약파동」이 발생할때마다 도입추진이 거론되고 있으나 절차상의 문제등으로 시행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다.

수입식품의 철저한 검역과 소비자들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농산물의 자급의지 역시 시급하다.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밀」의 경우 91년 11월경 종교인 농민들이 중심이 된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발족,지난 한햇동안 전국 65개 마을 25만평에 밀을 파종해 2백60t을 수확했다.『우리나라의 연간 밀소비량 5백만t에 비해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이지만 일방적인 식량종속에서 벗어날수 있는 바람직한 계기』라는 것이 정성헌본부장의 얘기다.

이제 외국산 농수산물 수입액은 69억달러(92년 기준)에 이른다.농산물수입자율화는 이미 88%에 이르러 쌀을 제외한 곡물의 95%가 수입품으로 대체되는 추세다.이런 현실에서 수입식품의 안전성 확보야말로 국민의 건강은 물론 국가존립과도 직결되므로 정부와 소비자의 공동대응이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손남원기자>
1993-02-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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