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북방외교의 기원을 따진다면 서독의 동방외교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서독이 동방외교를 시작한 것은 66년무렵부터다.당초엔 동독을 고립시키고 수출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동구에 접근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그것을 화해와 통일지향의 동방외교로 본격 발전시킨 이가 8일 별세한 브란트 전서독총리였다.◆69년 10월 집권한 브란트가 아데나워 시절부터의 외교방침이었던 할슈타인원칙(소련외의 동독승인국과는 외교관계를 갖지않는다)의 완전포기를 선언한 것이 동방외교의 공식출범이었다.70년 소련·폴란드등과의 동방조약을 체결했으며 여세를 몰아 마침내 동서독기본조약을 성립시킨 것은 72년 그리고 73년 유엔동시가입도 이룩했다.20년전의 일이다.◆74년 동독 스파이사건으로 브란트는 퇴장했으나 동방외교는 계승되고 발전되었다.74년 동서독상주대표부가 교환설치되고 81년엔 슈미트 서독총리의 동독방문이 이루어졌다.82년 베를린과 함부르크간의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87년엔 호네커 동독공산당서기장의 서독방문으로 이어졌다.서독의동독흡수통일은 이같은 동방외교의 오랜 축적위에서 가능했던것이다.◆불과 5년의 일천한 역사지만 우리의 북방외교도 중소등 구공산권과의 완전수교,올림픽 성공적개최,유엔동시가입,남북한 화해 불가침및 교류협력선언등 큰성과를 거두었다.브란트의 동방외교에 손색없는 토대의 마련이요 출발이라 할수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통일외교로의 계승이요 발전이다.◆「유럽의 동방외교」라면 「아시아의 북방외교」라 못할것도 없을 것이다.때마침 노벨상의 계절이다.동방외교에 돌아간 평화상이 북방외교를 못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그러나 실망은 금물이다.한반도의 민주평화통일이 달성되면 상황은 달라질수 있다.「서둘지는 않으나 중단하지 말고 인내심 깊게…」이제는 고인이된 브란트가 우리에게 하고있는 충고다.
1992-10-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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