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문학교류 가교 마련”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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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7-29 00:00
입력 1992-07-29 00:00
『수직이 아니면서도/가장 곧게 자라는 나무/전기를 일으키지 않는/그 위안의 나뭇가지에/결코 앉지 않는/거룩한 새/…날다가 죽어 털썩 떨어지는/오리는 얼마나 부러운 삶이랴/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곳/그 먼 곳을 유유히 넘나드는/축복받은 새/나는 때때로 오리가 되고 싶다』
독일시인 하랄드 하르퉁씨가 『반제호반에 황혼이 지는 시간에 한국의 시를 읽는 기쁨이 크다』면서 「물오리」를 비롯,김광규시인의 시 10편을 독일어로 낭송했다.시인 자신이 한국어로 낭송한 다음이었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모두들/관리가 되려고 했다…』로 시작되는 우화적인 시 「삼색기」가 낭송될 때는 객석의 독일 독자와 문인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언어의 장벽을 넘어 시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낭송이 끝난후 하르퉁씨는 『거룩한 새로 표현된 물오리가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시인 자신만 갖고 있는 시화된 의미인가?』란 질문을 했고 훔볼트대의 전코리아연구소장 헬가 피히트교수는 『프라하에서 열린 한국문학번역자대회에서도 「상징」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물오리는 한국인에게 성실성의 상징인가 아니면 사랑의 상징인가? 한국전통시의 은율과 이 시의 관계는?』등의 질문과 함께 『독일어 번역이 잘된듯 싶다』고 평했다.
베를린문학교류협회(LCB)가 한국문인 9명을 초청,반제하우스에서 지난 13∼16일 가진 한국문학주간은 이처럼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첫날은 문학평론가 김병익씨가 이 행사의 주관자이자 LCB의 제2대 회장인 평론가 카를 리하교수(지겐대)와 함께 「현실과 언어,그 치열한 긴장」이란 주제아래 한국현대문학의 조류를 한국사회의 발전양상과 관련지어 조망하는 발표를 했고 둘째날부터 소설가 홍성원(이리나 리프만)김원일(클라우스 슐레징거)김주영(한스 요하임 쉐틀리히)씨와 시인 오규원(두르스 그륀바인)김광규(하랄드 하르퉁)김혜순(유디트 쿠카르트)씨가 각각 자신의 파트너 독일작가들과 함께 단편소설의 일부구절 또는 시를 낭송했다.
직장인의 참여를 위해 매일 하오8시에 시작된 이 행사는 주최측의 예상과 달리 90여개의 객석이 항상 메워진채 자정이 가깝도록 토론이 계속되는 열띤 분위기를 유지했다.
서베를린 지역의 일간지 타게스 슈피겔과 동베를린지역의 일간지 베를리너 차이퉁은 이 행사를 문화면의 주요 기사로 다루었고 김광규시인이 자유베를린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타게스 슈피겔지는 이 행사가 『생소한 문학세계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앞으로(한국과 독일문학의)밀접한 상호교류의 가교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비록 번역과정에서 언어의 심오한 맛이 전달되진 못했어도 오규원의 시낭독은 그 시가 내포하고 있는 미묘한 분위기가 강한 극광처럼 빛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바로 이점이 시적 이해는 언어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할 수 있음을 증명한 예』라고 극찬했다.
LCB의 창설자이자 문학계간지 「과학기술시대의 언어」편집인인 발터 횔러러씨는 행사기간중 발표된 한국문학작품의 독일어 번역본을 모두 읽고 오규원 김광규 김혜순시인의 작품들을 「과학기술시대의 언어」에 우선 싣고 다른 작품들도 가능한한 빨리 독일의 문학전문지에 실리도록 주선하겠다고 밝혔다.
주최측의 자체평가에 의하면 한국고유의 전통적 창작기법에서부터 유럽과 공통된 문학언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문학이 독일독자들에게 비교적 잘 전달됐다는 것이 이번 행사가 거둔 큰 성과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한국문학이 독일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1차 번역된 작품을 독일쪽 현역작가와 원작자의 토의를 거쳐 다시 손질하며 완전한 이해를 도운 파트너 작가제의 진행방식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파트너 작가제는 한국작가와 독일작가의 창작경험을 나누는 중요한 교류의 계기도 됐다.
또한 동베를린 지역 훔볼트대 한국학교수진이 마지막날 종합토론에 참석,『엄청난 양의 남한문학을 처음 접한다』면서 옛 동독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인력의 활용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 행사가 거둔 의외의 한 성과였다.
카를리하교수는 『한국문학을 독일에 소개한 첫 시도로선 대만족이다.두나라 문학세계를 좀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이런 행사가 계속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베를린=임영숙기자>
1992-07-2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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