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안법 철폐」 주장을 보며…/이명영(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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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6-19 00:00
입력 1992-06-19 00:00
북한의 기본노선은 김일성부자주권하의 통일과 그것을 위한 「남조선혁명」이다.이를 위해 우리의 국가보안법 철폐·미군철수와 연방제를 관철하려고 한다.이중에서도 보안법 철폐가 핵심이다.이것만되면 다른 것은 저절로 된다고 계산한다.보안법은 북한이 「남조선혁명」공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것이므로 이를 통일의 장애물로 보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도 저들 체제를 지키기 위해 각종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1975년 실시된 형법같은 것은 김부자권력의 절대옹호와 그 주권하의 통일 원칙을 어기면 반혁명죄로 몰아 사형토록 되어 있어서 보안법의 유형이 아니다.이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뒤늦게나마 1990년 8월11일의 필자가 밝힌신문기고에서였다.
이에따라 보안법 시비의 소리가 우리앞에서 수그러들었고 또 그해 9월의 남북총리회담때엔 북쪽 총리가 보안법이 통일의 장애물이라고 강조한데 대해 남쪽 강영훈총리가 북쪽에는 더 지독한 법이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자 연형묵총리는 입을 다물고 만 일도 있었다.북쪽으로서는 모종의 대책이 필요했을 것이다.그러자 북한은 1987년에 민주적인 형법개정이 있었다는 정보를 작년 가을부터 퍼뜨리기 시작했다.정보는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작년 가을에 평양을 방문했던 일본의 관동학원대학 대내헌소 교수가 그곳에서 소위 1987년 형법전문이 실린 소책자를 건네받았다.그는 북한법에 관한 몇편의 논문을 썼고 김일성과도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이다.1987년 2월5일에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 제2호로 채택되었다고 되어 있는 이 소책자는 권두에 북한의 국장과 국기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면 정부문서인 것 같은데 웬일인지 발행처나 발행연월일은 없는 괴상한 문서이다.
이 형법은 제1조에서 형법의 임무를 범죄와의 투쟁을 통한 국가주권과 사회주의제도의 보위로 규정함으로써 1975년 형법이 그 제4조에서 형법의 임무를 주석을 보위하고 정부의 노선을 옹호하며 전사회를 주체사상으로 일색화한다고 했던 것과는 외견상 대단한 변화를 보여 주었다.주체사상일색화란 말은 김부자유일체제의 옹호 관철이란 말이다.이는 당의 지상목표이며 헌법의 기본지침이다.어떤 법률도 이를 명문화해야 한다.예컨대 민소법도 그 임무는 전사회를 주체사상으로 일색화하는 데 있다고 했고 재판소구성법도 같으며 특히 재판소의 기본임무는 재판으로써 반혁명활동을 진압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위 1987년 형법보다 4개월 후에 발행된 심형일의 「주체의 법리론」이란 책은 나라로부터 법학박사학위까지 받은 책인데 거기에는 「북한의 모든 법률의 임무는 주체사상과 당의 정책을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명기하고 있다.전체주의 독재국가의 법제도의 당연성이다.그러니까 이러한 임무를 규정하지 않은 1987년 형법같은 것이 나왔다면 그것은 거짓말인 것이다.그래도 우리 사회엔 북한 형법이 크게 달라졌다는 착각이 들고 있다.저쪽의 대남정보교란공작이 잘 기능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김일성대학의 김군식교수는 1975년 형법을 해설한 교과서의 저자이다.그의 형법학Ⅱ(각칙)제2판이 나온 것이 소위 1987년 형법과 같은 해이다.그가 새 형법의 제정을 몰라서 1975년 형법에 따라 김일성대학의 교과서를 썼겠는가.도쿄에는 「공화국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김규승이란 형법학자가 있다.그가 북조선 건국 40주년을 기념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형사법제」란 책을 낸 것이 1988년 9월9일이다.그가 1년반 전의 소위 1987년 형법을 몰라서 1975년 형법을 조국의 현행형법이랍시고 그것도 건국 40주년 기념이랍시고 냈겠는가.
그런데 그 김규승교수가 대내교수와 연명으로 일본의 법율시보 3월호에 대내교수가 평양에서 받아온 1987년 형법의 전문번역과 해설을 내놓았다.같은 3월에 도쿄를 방문중이던 북한의 조평통 부위원장 한시해는 남한 기자와의 면담에서 또 한바탕 보안법의 철폐를 주장했다.기자가 『북쪽에도 그런 법이 있지 않느냐』고반문했더니 한은 『북한에는 그런 것이 없다.남쪽이 들고 나온 것은 과거의 형법이다.지금은 모두 개정되었다』라고 했다.1987년 형법이란 것이 남쪽의 보안법 철폐를 노린 공작용임을 자백한 셈이다.
지난 5월5일엔 제7차 총리회담과 때를 맞추어 중앙통신은 김군식교수의 「공화국현행형법을 바르게 리해한데 대한 약간의 문제」란 논문을 자상히 전했다.다음날 평양방송도 같은 방송을 했다.1987년 형법이 민주적 형법으로서 통일의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니 남쪽도 빨리 보안법을 철폐하여 통일의 장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법제정및 내용을 보도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이런 방송을 했다는 것 자체가 공작선전용인 것이다.같은 날에 저쪽 기자들은 형법 소책자를 서울쪽에 슬그머니 배포하는 작전까지 썼었다.
만보 양보하여 1987년 형법이 진짜라 하더라도 그것이 북한체제와 형사정책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반혁명범죄가 반국가범죄로 이름이 바뀌고 범죄의 종류나 형벌에 완화의 변화가 있어도 범죄 구성의 요건들에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다.또 지난 4월에 최고인민회의에서 형소법이 인권 신장의 방향으로 개정되었다고도 하나 그것도 북한헌법의 훌륭한 인권조항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쓸데 없는 일이다.
요는 김부자권력의 옹호와 그 주권하의 통일이란 기본원칙에 따라 모든 법이 운용되기 때문에 백번 개정되어도 실체적인 의미는 없는 것이다.
겉으론 악수로 회담하면서 속으론 혁명공작에 전력을 쏟는 저쪽의 성동격서와 담담정정의 전술에 남쪽은 좀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날로 정세가 불리하니 북은 별의별 수단을 다 쓸 참이다.가짜 형법을 만들어 내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다.<성대사회학과 교수>
1992-06-1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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