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증축공사장 식당아줌마의“큰뜻”/대학발전기금 500만원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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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6-10 00:00
입력 1992-06-10 00:00
◎조연희여사/“기초과학 잘 모르지만 「기초」 튼튼히 하고자…”/부군 사업실패뒤 온갖 궂은일/“서울대서 번돈 서울대에 쓸뿐”/두아들 대학 못보낸 한 푼듯 눈물

온갖 풍상을 겪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50대여인이 공사판에서 인부들을 상대로 밥을 해주며 어렵사리 모아온 5백만원의 거금을 대학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다.

서울대 정밀기계 설계연구소 신축공사장에서 인부식당을 운영하는 조연희씨(56·관악구 신림10동328)이다.

9일 하오 4시 서울대 총장실에서 김종운총장에게 지난해 9월부터 식당을 운영하며 한푼 두푼 모아온 5백만원의 수익금 전액을 기초과학지원을 위한 대학발전 기금으로 전달한 조씨는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오히려 쑥스러워 했다.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인가요.서울대에서 번 돈을 서울대에 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조씨는 이같은 말만을 되풀이해 오히려 보는 이들을 더 크게 감동시켰다.

조씨가 서울대에 기금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달 중순.

지난해 9월부터 서울대 신축공사장에서 30여명의 인부들과 교직원등을 위해 허름한 판자집 식당에서 식사와 막걸리 등을 판매하면서 교직원 등으로부터 서울대가 의외로 기초과학 육성기금조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으면서부터였다.

『건설현장에서 기초가 튼튼해야 공사가 잘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어요.무식한 아낙네가 기초과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지만 저의 조그만 보탬이 대학발전의 기초가 되는 곳에 쓰였으면 좋겠어요』

조씨가 이날 내놓은 5백만원은 부자들에게는 하잘것없는 액수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참으로 남모르는 고통과 한이 서려있는 돈이다.

조씨는 지난 89년까지만해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조그만 식품가게를 운영하며 공무원인 남편과 슬하의 5남매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며왔다.

그러나 남편이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버린뒤 신림동의 자그마한 전세방에서 시어머니와 5남매를 혼자 부양해야만 했다.하루하루 끼니를 잇기 위해 파출부며 봉제공장일·봉투붙이기등 온갖 궂은 일을 닥치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생활때문에 결국 식당일을 돕고있는 두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한도 안아야 했다.그래서 조씨는 이날 『비록 몇푼 안되는 돈이지만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는데 보탬이 된다면 내자식이 잘된 것같은 위안으로 삼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기금을 전달받은 김종운총장은 『조씨의 정성은 수십억원을 기증한 어느 부자의 마음보다 값진 것』이라면서 『조씨의 조그만 정성이 우리나라 대학 기초과학육성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거듭거듭 고마워 했다.

조씨는 이 일말고도 그동안 서울 노량진,수색지역및 경기도 안양에 사는 무의탁 할머니 3명을 부모처럼 모시며 달마다 찾아가 연탄과 쌀을 사드리는 등 보이지 않는 선행도 베풀어온 것으로 알려졌다.<박상렬기자>
1992-06-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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