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종식투쟁의 선봉/노벨평화상 받은 아웅산 수키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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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10-15 00:00
입력 1991-10-15 00:00
◎독립영웅 아웅산장군의 딸/군사정권에 의해 2년째 가택연금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아웅산 수키여사(46)는 지난 62년부터 30년간 지속되고있는 미얀마(구버마)의 군부독재에 맞서 지난 88년부터 대정부투쟁을 주도해온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화신.

수키여사의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녀의 개인적인 영광 차원을 넘어 민정이양을 거부하고 물리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현군사정부의 정당성문제등 미얀마정국의 장래에 끼칠 파장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같다.

현재 2년이 넘도록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는 수키여사의 수상으로 야당과 국민의 민주화 투쟁의지가 크게 고무되는데 반해 미얀마의 군사정부는 더 거센 국제적 압력에 직면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미얀마독립운동의 영웅 아웅산의 딸인 수키여사는 영국인 역사학자와 결혼,2명의 자녀를 두고 옥스퍼드에 거주하던 평범한 가정주부였으나 88년4월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민주화투쟁에 뛰어들게 됐다.

그해 국민들의 반독재시위가 군부에 의해 잔혹하게 탄압받는 것을 목격하고는 대중앞에 서게됐고 부친의 후광에 힘입어 곧바로 반정부투쟁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러던중 그해 9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법질서위원회(군사평의회)를 설치함으로써 민주화운동은 대량학살의 비극으로 끝나 수키여사는 심한 좌절을 맛보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투쟁으로 군부로부터 다당제선거실시라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수키여사는 다음해인 89년7월 선거를 의식한 군사정권에 의해 내란선동혐의로 가택연금조치를 당했으나 그녀가 창설한 전국민주연맹(NLD)은 90년 5월의 총선에서 총의석의 80%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당초의 약속을 번복,NLD에의 권력이양을 거부하고 구금법을 개악,그녀에 대한 연금기간을 3년이나 연장함으로써 수키여사는 시련을 겪고 있다.

한편 집권 국가법질서위원회측은 원한다면 언제든 출국을 허용하겠다고 수차례 제의했으나 수키여사는 군사정부가 정치범을 전원 석방하고 NLD에 권력을 이양하지 않는한 절대 미얀마를 떠날 수 없다고 거부해 왔다.

수키여사의 수상 발표 직후NLD를 비롯,전버마학생민주전선(ABSDF)등 민주세력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를 계기로 미얀마인들에게 군사정부에 대한 투쟁을 강화토록 촉구했으나 미얀마 군사정부측은 이를 「내정간섭」으로 몰아붙이고 있으며 그녀의 석방은 커녕 군부탄압을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밝히고 있어 앞으로 정정이 더욱 혼미스러울 것으로 예측된다.

수키여사는 평화적 민중혁명지도자라는 점에서는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여사와 부친의 후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여사와 비유되고 있다.

수키여사는 부친이 암살당하기 1년전인 46년 수도 양곤에서 출생했으며 주인도대사인 어머니를 따라가 뉴델리에서 학교를 다녔다.

15세때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했으며 이때 영국인 티베트학교수와 결혼,18살과 14살인 두아들을 두고 있다.<최병렬기자>
1991-10-1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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