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추진기반 조기구축 포석/소 지도부 전격개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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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8-23 00:00
입력 1991-08-23 00:00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방장관과 KGB의장,내무장관등 소련전체를 움직일수 있는 핵심요직 3명을 새로 임명하는데 있어 대통령직무 재개후 만 하루도 걸리지 않은 신속함을 보인 것은 향후 소련정국의 향배를 점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될것으로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또 소련의 새 정부구성을 놓고 고르바초프와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양자간의 정치력 균형에 대해 모종의 타협을 이루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장관등의 임명이 연방대통령의 고유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새 국방장관등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임명이 사전에 옐친과의 합의를 거쳐 발표됐다는 사실은 옐친이 쿠데타를 분쇄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댓가를 강력히 요구,고르바초프로부터 양보를 얻어낸데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부르고 있다.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손을 함께 잡음으로써 옐친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다 확대할수 있는 반면 고르바초프는 옐친의 강력한 지지를등에 업고 안정적으로 소련정국을 이끌어 나가는게 가능하다.이는 고르바초프가 과거와 같이 큰 반대를 우려하지 않고 자신의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갈수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새로 요직에 임명된 모이세예프와 셰바르신,트루신등 3명의 신상에 대해선 아직 정확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그러나 셰바르신 KGB의장은 오랜 외교관 생활을 거쳐 KGB에 투신,KGB의 해외공작 총책임자직을 맡아온 인물로서 국내정치에 개입한 적이 전혀 없었으며 오랜 외국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인물로 평가됐었다.
모이세예프는 참모총장 재직시 고르바초프의 군감축및 국방비 삭감에 강력히 반발,강경파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한때 이번 쿠데타의 주도인물이란 얘기가 나돌기도 했었다.그러나 모이세예프는 지난 1월 독립을 요구하는 발트 3국을 무력진압한다는 야조프국방장관의 계획에 반대,야조프와 마찰을 빚은 이후 개혁지지 쪽으로 돌아섰다는 평을 들어 왔다.
이처럼 개혁지지 세력을 군과 KGB의 최고위직에 앉힘으로써 고르바초프와 옐친은쿠데타 이후의 빠른 사태수습과 함께 개혁추진을 위한 안정기반을 확실하게 다진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유세진기자>
1991-08-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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