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두」약속 더는 어기지 말라(사설)
수정 1991-06-23 00:00
입력 1991-06-23 00:00
명동성당에 「진입」하여 34일 동안 운동권이 교회에 끼친 피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래도 궁지에 몰린 사람도 신앙적 관용으로 거느리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회적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하여 교회와 사제가 기울인 노고는 대단했다. 그걸 알았으므로 서울대교구의 1백만 신도들도 말없이 참으며 기다린 것이다. 기도하는 자리를 침해당하는 일처럼 신자들에게 참기 어려운 일이 없지만 바로 그 기도하는 성스런 자리를 불법으로 차지하고서 국법을 조롱하듯 온갖 일을 벌이며 오히려 신도들의 출입을 단속하고 소요를 벌여온 운동권을,신도들은 꾹꾹 참아준 것이다.
신도들이 그렇게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사제들의 고뇌에 차고 진실된 노력에 대한 예우였었다. 그러나 사제들의 그런 노력까지 우습게 기만하기를 거듭하는 「국민회의」와 강기훈씨 등 운동권 세력들의 행동을 신도들도 더 이상은 용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제들로서는 이런 신도들에게 면목이 없어지게도 되었다.
이렇게 결과적으로 선의의 협조자를 저버리는 행동은,운동권 자신들을 위해서도 매우 손실을 주는 일이다. 흔히 성당측의 이런 움직임이 「보수」층의 의사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수석보좌신부를 비롯하여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제들 중에는 민주화 과정에서 기도회나 단식 등으로 정의와 양심의 행동을 지원한 경험을 지닌 성직자들이 많다. 그들을 염증나고 난처하게 만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실제로도 변호인단이나 증언 등 법적 대처를 위해 원한다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성당측은 하고 있다. 시위를 부추기거나 투쟁을 동조하는 성직자들의 공허한 지원보다는 훨씬 효율적이고 확실한 지원을 여기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성당측을 그만 난처하게 하는 것이 운동권으로서는 현명한 일이다.
강씨는 24일에 「자진출두」하겠다고 밝혔고 국민회의 지도부는 29일까지를 농성시한으로 하겠다고 밝혔으므로 성당측이 다시 한 번 인내하여 적어도 24일까지는 기다리겠다고 말한 것은 아주 온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식농성중인 국민회의 지도부는 그들이 밝힌 「시한」 이전에 응급차에 실려나오는 일이 부득이해 보인다.
탈진하여 마지막이 되도록 막다른 방식의 이같은 「운동양식」은 회생불능의 인상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성당측이 24일의 「자진출두」 약속을 다시 한 번 기다리기로 한 뜻을 존중하여 신도들도 지켜보겠지만 이 약속에 금이 가면 이제 더는 그들의 정당성을 지탱해줄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국민의 시각 또한 신도들과 함께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신뢰까지 잃는 일이 없기를 거듭 당부한다.
1991-06-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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