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북한벌목장 취재기:5·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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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6-13 00:00
입력 1991-06-13 00:00
◎북 인부들,「김일성 주도의 통일」 안믿어/북한체제 우위 거론안해 되레 “이채”/서울에 대한 호기심·동경으로 가득

『서울서 오셨다고요. 정말 서울서 왔습니까』 서울사람을 처음 보는 북한 인부들은 놀라움과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바로프스크와 체그도민을 왕복하는 침대열차는 언제나 북한 인부들로 북적거린다. 기자가 철로 연변의 북한 벌목장을 찾아 이 기차를 탔을 때도 적지 않은 북한 인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찻간에서 만나는 북한 인부들은 서울서 온 기자의 모든 것에 대해 거의 무한대적인 반가움과 호기심을 드러내곤 했다.

이들은 처음 기자들 본 순간 자신들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낯선 듯한 느낌을 갖는 듯 곁눈질과 함께 의아하다는 표정을 보내오곤 했다. 그러나 곧이어 기자가 『북한에서 오신 분들 아니냐』면서 말을 건네자 바짝 다가서서 어디서 왔으냐,정말 서울서 온 사람이냐고 마치 동물원의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온몸을 훑어내리곤 했다. 그 시선에 적대감은 없다. 그냥 신기해 못살겠다는 표정이 눈길과 눈길 사이에잔뜩 묻어나올 뿐이다. 옷자락을 만져보기도 하고 어떻게 이곳을 올 수 있었느냐를 궁금해한다. 이들은 아마도 한국과 소련의 수교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일반 벌목인부들은 남쪽 기자 일행과 대화를 나눌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저 반갑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남쪽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고,또 그래서는 뭔가 큰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해 보였다.

이에 비해 자신을 체그도민에 근무하는 무역일꾼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기자의 침대칸까지 따라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자신의 여권까지 보여주는 이 청년은 『소련과 중국의 석유공급 거부로 북한에 몇십년 만에 모내기를 위해 소가 등장했다』고 북한 실상을 전해주었다. 그는 남한이 잘살게 돼 소련과도 수교가 되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체제로는 더 이상 『인민의 생활향상을 꾀할 방법이 없다』면서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남북한이 같이 잘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런 말을 하는그의 표정에는 가끔 열등감이 엿보인다. 약간의 적대감 같은 것도 있어 보였다. 간간이 그는 인민들이 나서서 휴전선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북한식 통일논리를 이야기하기도 했으나 남북한간 통일논의의 이니셔티브가 이미 남한 쪽에 있음을 부인하진 않았다. 시베리아에 나와 있는 벌목장의 사람들마저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북한인들처럼 이미 북한의 체제우위나 자신들의 주도에 의한 통일을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은 흥미있는 발견이었다.

체그도민 벌목사업본부의 박춘송 안전부장도 기자 일행에게 통일논의 같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하면서 『당신의 기사가 통일에 방해가 되지만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씨의 이 말은 시리즈를 다루는 동안 가장 어려운 주문이 돼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때로는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는 것이 통일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체그도민이나 철로 연변에서 본 북한 벌목인부들의 모습은 모스크바의 빈민가에서 만나는 월남인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를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들 만큼 이들의 모습은 평양 시가지에서 우리 기자단이 봐온 시민의 모습과도 너무 다르다.

박춘송씨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인들이 벌목한 벌목량은 4백만㎥였다. 한때 북한 인부들은 최고 5만명이 시베리아 산림지대에 나와 있을 때도 있었다.

벌목장에 침을 놓으러 다닌다는 하바로프스크 거주동포 이 모 여인(59)은 벌목인부들의 상당수가 고환이 붓는 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병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름의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데 따른 병인 것으로 본인들이 알고 있고 또 그렇지 않겠느냐고 풀이했다. 고환이 붓는 병이 나타날 만큼 생리적 문제가 심각하다면 여기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소련 여자를 강제추행한다는 소문이 넓게 퍼져 있었다. 이는 소련의 북한 인부 철수론 주장자들이 내세우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체그도민행 기차에서 만난 칼리나씨(53·틔르마 거주)는 『여자를 강제추행한다는 소문은 있지만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북한인들이 개를 사러 다니고 헌 텔레비전을 사러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으며 비교적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온순하다』고 말했다.



체그도민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체그도민서 본 벌목인부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난 기자에게 서울까지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면서 통일이 되거든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혹시 통일이 되면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면서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하기도 했다. 틔르마역에서 내리는 그들에게 만화주간지 한 권을 건네자 『이런 것 가져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가 다시 플랫폼 쪽 창문으로 다가와 손짓 발짓으로 만화책을 달라고 해 건네주었다. 그 사이 간부들과 상의해 입장을 바꿨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남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다시 온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서울에 대한 무제한의 호기심과 동경,통일로 북한사람들도 같이 잘살자는 것이 시베리아 북한 벌목현장의 대남관이었다. 이미 그들에게 남한을 통일시켜 잘살게 해주겠다는 낡고 오래된 김일성식 대남관은 없었다.<체그도민(소)=김영만 특파원>
1991-06-1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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