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보기에 민망하고 딱하다. 올해 일흔셋의 연세다. 성직에 몸을 담았던 분이다. 시위연단에 나선 한복두루마기의 꺼칠한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이 나라는 정말 비민주 독재의 암담한 상태에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문익환씨. 그가 결국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 웬만하면 그냥 두지 하는 동정심도 생긴다. 그러나 그는 웬만하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밀입북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중 질병을 이유로 한 형집행정지결정에 따라 출감한 사람이다. 근신하며 몸조리를 하기는커녕 전국을 무법천지로 누비며 불법시위를 선동하고 주도하며 다녔다. ◆7개월여 동안 전국 25개 지역을 돌며 1백6회에 걸쳐 방북보고대회 연설을 했단다. 강군과 김씨 장례위원장,그리고 김양 사망대책위원장을 맡았고 김일성 찬양의 글을 발표하기도. 민주화도 해야 하고 북한을 자극하기도 싫었던 모양이지만 그것은 본말의 전도가 아닌가. 민주화를 위해서도,통일을 위해서도 무법과 무정부가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체제와 정부와 법질서는 지키면서 민주화도 하고 개혁도 하며 통일도 하자. 소리 내지 못하는 많은 「어진 백성」 「보통시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모두들 이제 그런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총리폭행혐의로 수배된 학생 중 한 명이 자수를 하고 무혐의를 주장했다. 도망다니는 것보단 훨씬 떳떳하지 않은가. 수배학생의 노모는 눈물의 사죄를 했고. 실망 속에 비친 희망의 빛들이란 생각이 든다. ◆12일간이나 공방이 거듭되던 김양 시신 부검문제도 법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성대총장 등 원로들의 중재와 설득의 덕분이라고 한다. 백병원의 환자들과 고대 앞의 주민들도 말리고 나섰다. 「자수하는 용기」와 「설득하는 용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전화위복의 길조들이 아닐까 기대해 본다. 문익환씨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1991-06-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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