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즉흥적 외교행태/박정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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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4-22 00:00
입력 1991-04-22 00:00
외교는 돌출성 사건이어서는 안 되고 따라서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외교관이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같은 불가피한 신중함 때문이다.
특히 의전절차는 「형식」을 통해 상대국에 예의와 존중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무문제와 함께 외교의 중요한 골간을 이루고 있다. 그것이 정상간의 만남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상적인 외교 궤도를 벗어났다는 섭섭함을 감출 수 없다.
소련측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제주도착을 10여 시간 앞둔 19일 새벽에야 1박과 함께 20일 상오 정상회담을 갖자고 알려오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또 제주공항에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45분여 늦은 하오 9시45분쯤에야 도착,많은 환영객들을 기다리게 했다.
결국 이날 만찬은 외교상 전례가 없이 밤11시를 넘겨서 시작,다음날인 20일 새벽 1시40분까지 진행되는 「밤참」 형식이 되고 말았다.물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박하기로 일정을 연장함으로써 당초 시간에 쫓겨야만 했던 정상회담이 다소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남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냉전종식 및 평화정착,동북아와 아태지역에서의 협력증진,양국 쌍무협력관계 증진 등을 보다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었던 것도 일정 연장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이번 방한이 국빈방문이 아닌 공식실무방문인만큼 형식적인 외교절차를 어느 정도 생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한을 불과 열흘 앞두고 한국방문을 통보해온 것에서 비롯된 소련의 즉흥적인 외교행태는 사회주의국가의 변칙적인 의전관행을 감안한다 해도 불쾌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초강대국인 소련이 행여나 우리를 동북아의 작은 나라 정도로 얕잡아 본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부의 한 의전관계자는 소련측의 시간계획이 죽 끓듯 바뀌자 방한 당일인 19일 낮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주에 온다는 사실 이외에는 결정된 게 아무 것도 없다』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치고 떠나기 직전 기자간담에서 머지 않은 장래에 서울을 공식방문할 것임을 밝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두 번째 방한은 정상외교의 틀내에서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
1991-04-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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