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고도”… 온건개혁 선택/공산당 재집권의 의미와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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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4-02 00:00
입력 1991-04-02 00:00
지난 31일 46년 만에 첫 자유총선을 실시한 동구의 고도 알바니아의 선거결과 예상을 뒤엎고 집권노동당(공산당)이 압승했다. 노동당은 대도시에서는 패배했으나 이를 농촌지역에서 만회했다.
노동당의 승리는 알바니아의 1백90만 유권자들이 제1야당인 민주당의 급진개혁보다는 라미즈 알리아인 민간부회의 의장(대통령)의 온건한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다른 동구국가들의 선거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지난 89년 동구를 휩쓴 민주화혁명 이전 반체제운동이 비교적 활발했던 폴란드 체코 등 개혁선두그룹에서는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됐지만 상대적으로 반체제움직임이 거의 없던 루마니아에서는 공산당과 뿌리를 같이하는 사회당이 선거를 통해 승리했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촌야도의 경향이 특히 두드러졌다. 알바니아 유권자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지역 주민들은 급격한 변화에 반대하며 노동당을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다.또한 급격한 변화에 대체로 부정적인 경향이 있는 군 경찰이 유권자의 10∼15%를 차지했다는 사실도 노동당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생노동자 등 젊은층과 지식인을 기반으로 지난해 12월 창당된 민주당이 노동당 정권을 뒤엎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었다.
노동당은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과정에 과도기를 두어 실업과 물가인상에 대한 충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업부문에서는 국영집단 농장과 사영농장의 공존을 주장하는 등 점진적인 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치무명인 엔지니어 출신의 프란코 크로키 후보가 수도인 티라나에서 출마한 알리아 대통령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당선,노동당에 치명타를 입혀 민주당도 「상징적」인 승리를 주장할 명분은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신헌법초안에 따르면 대통령이 의원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알리아가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알리아가 낙선된 것은 지난해부터 개혁을 도입한 노동당에는 커다란 타격이라는 지적이다.
이것은 알바니아 국민들이 식량부족·실업·빈곤이 만연되어 있는 현재의 알바니아사태에 대해 집권층에 깊은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알리아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 준 민주당은 또한 노동당의 거물인 카플라니 외무장관과 데데 당중앙위 의장도 낙선시키는 등 티라나 슈코더르블로라시를 비롯한 대도시 지역을 석권,체면을 유지했다.
비록 유럽 최후의 스탈린주의국가로 통하는 알바니아가 자유총선을 실시,알바니아의 현대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알바니아의 앞날은 지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85년 2차대전의 영웅인 엔베르 호자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알리아는 지난해부터 조심스런 개혁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앞으로 알바니아의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알바니아는 2년간 계속된 한발로 극심한 식료품난을 겪고 있으며 전력을 수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공장가동률도 현저히 떨어져 있다.
게다가 최근 알바니아의 주요수출품인 원유 크롬 등의 가격하락이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알바니아는 크롬구리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지만 외국인의 투자를 금지하는 조항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정책을 추구해 왔던 것도 경제난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89년까지 동구의 개혁을 비웃던 알리아가 지난해 소규모상업과 농토의 사유화 기업경영의 자율성 부여 외국인 합작투자 허용 잉여농산물판매 23년 만의 종교자유화 등 개혁조치를 발표한 뒤에도 서방으로 향한 알바니아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알바니아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알리아는 지난달말 알바니아의 난국타개를 위해 연정을 제의했지만 민주당이 노동당과의 연정에 반대하고 있어 총선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의 장래는 앞으로도 게속 험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곽태헌 기자>
1991-04-0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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