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방조약 통과 의미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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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12-25 00:00
입력 1990-12-25 00:00
새 연방조약의 인민대표대회(의회) 통과는 이미 예상돼 온 결과이다. 11월초 최고회의에 제출돼 압도적으로 통과된 바 있고 2천2백50명으로 구성된 의회에서도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이 법안이 저지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표결과정에서 나타난 찬반의 압도적인 표차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새 연방조약의 의회 통과가 지금 소련이 당면하고 있는 민족적인 제갈등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새 연방조약은 의회 통과 후 15개 연방공화국이 개별적으로 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정식 발효되게 돼있다. 개별 공화국이 이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경우 조약으로서의 효력발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발트해 3개 공화국과 그루지야,아르메니아공화국 등은 이미 표결 전부터 새 연방조약의 서명거부 방침을 공언해 놓고 있다. 예상대로 의회 표결도 이들 공화국 대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따라서 어느 의미에서 보면 새 연방조약의 강행통과는 크렘린과 이들 공화국간의 대립을 정면대결로 몰아 민족문제라는 소련의 「시한폭탄」을 발화점으로 내몰 가능성이 짙어졌다.
새 연방조약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마지노선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각 공화국의 주권을 최대한 양보하되 공화국들도 연방의 테두리내에는 남아 있으라는 것이다. 물론 군사 외교 통화 세제 등은 연방이 직접 관할한다.
새 연방조약도 그 자체로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써 1922년 레닌이 만든 소비에트연방조약은 소멸되게 됐다. 당시 레닌은 차르왕정 밑에서 러시아민족에게 속박당해온 제소수민족들을 하나의 연방 아래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과는 달리 발트해 3국을 비롯해서 소련내 많은 공화국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소연방에 편입됐다. 그리고 공산체제 70여년간 강력한 중앙통제 체제하에서 거의 주권행사가 중지된 상태로 지내왔다.
새 연방조약은 크렘린과 공화국간의 관계를 거의 대등한 관계로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크렘린으로서는 대단한 양보를 한 셈이다. 문제는 각 공화국들의 태도이다. 발트해 3국등의 요구는 권한이양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합병자체를 무효화하고 완전한 독립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몇개 공화국에서는 새 연방조약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크렘린측의 대응자세는 극히 강경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각 공화국 의회에서 이 조약을 심사하게 하는 대신 그보다는 승산이 높다고 보여지는 국민투표쪽으로 몰고갈 심산인 듯하다. 하지만 각 연방공화국 의회에서 독립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이 조약의 국민투표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은 수차례 공언한대로 새 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는 지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와 대통령 직할통치 같은 강경대응만이 고르바초프가 쓸 수 있는 남은 카드라고 보여진다. 시한폭탄이 터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현재 독립을 선언한 지역들의 분위기로 볼 때 이러한 강경조치는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크렘린과 연방공화국들 누구도 현실적인 타협점을 쉽게 찾아낼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새 연방조약의 의회 통과는 소련의 앞날에 오히려 불길한 예감을 던져주고 있다.<이기동기자>
1990-12-2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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