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이어주는 서울과 평양(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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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9-21 00:00
입력 1990-09-21 00:00
남북한 축구대표팀의 평양ㆍ서울 교환경기가 결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제 남북한간에 뭔가 색다른 일이 성사되어 민족문제 해결의 큰 전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공(구)은 모나지 않고 둥글다. 정지하지 않고 항상 흐르며 율동한다. 공을 구사하는 주체의 기량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또 축구경기에는 항상 의외성과 전격성이 따른다. 남북문제 해결도 축구에서 배우며 축구처럼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지금 남북한간에 겉으로는 눈에 띄게 화해의 기운이 돌고 있다. 지난 9월초 서울의 남북총리회담 이후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북한의 자세에 변화가 있는 듯도 하다. 적극적인 개방이나 개혁에로의 길은 아니더라도 다소 유연하고 유화적인 입장이 엿보이는 것이다. 특히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체육회담ㆍ공동응원단 구성 등을 제의하고 나섰다. 여기에 비록 정치적 접근이기는 하나 유엔가입문제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 등에도 나왔다. 우리 축구대표팀 초청기간이 바로 평양의 총리회담시기란 점에도 눈여겨지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북경의 한국관광단을 유치한다는 방침아래 구체적인 실무작업을 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우리 축구대표팀의 평양초청도 그 일환일 수 있으나 과거 전통적인 「경평축구」의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 대표팀의 평양방문은 북한 대표팀의 서울 원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친선경기,예컨대 서울 평양간 마라톤,부산ㆍ신의주간 사이클대회 등 당장이라도 실현될 수 있는 경기종목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추어 지금 북경에 가 있는 한국인들이 북한방문을 원하면 이를 허용키로 했다. 우리의 이같은 방침과 북한측의 한국관광단 유치계획이 맞아떨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족교류이며 이산가족 재회의 계기도 될 것이다. 이산가족 재회사업에 있어서도 반드시 적십자회담 형식만을 고수할 필요도 없다. 명분과 형태를 달리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스포츠교류는 물론 과학 문화 학술 언론인 교류도 그에 속할 것이다.

우리측의 7ㆍ20민족대교류 선언이니 8ㆍ15범민족대회의 취지도그런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 동포가 만나고 대화하고 헤어진 가족 친지를 찾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날엔 그것이 정례화,일상화될 것이고 서울에서 평양으로,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국토순례대행진이 이어질 날도 올 것이다.



서울ㆍ평양간 스포츠교류를 계기로 우리는 평양당국이 남북문제에 있어 지금까지 보여왔던 정치ㆍ군사문제 우선의 입장을 재고할 것을 기대하게 된다. 민족문제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감성에 의지되는 바 큰 것이다. 대개 「사람」이 개재된 문제해결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으로 접근될 때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오늘의 국제정세,특히 한반도정세변화 추세는 평양당국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한소 및 한중 관계개선의 필연적 추세를 막을 수 없다면 이에 참여하고 협조하는 일이 현명할줄 안다. 평양의 공은 서울로 오게 돼 있는 것이다.
1990-09-2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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