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선전장” 오명 벗고 분쟁해결사로(특파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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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9-03 00:00
입력 1990-09-03 00:00
◎냉전소멸따라 “평화 수호자” 부상/이란­이라크전ㆍ캄보디아내전 종식에 기여/「이라크봉쇄」 결의뒤 페만평화 중재를 기대

「실패작」「제3세계의 선전장」으로 치부됐던 유엔이 냉전 종식과 더불어 새시대의 「분쟁 조정자」「평화수호자」로 부상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의 전화를 막는 메커니즘으로 세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유엔은 지난달 28일 캄보디아 내전 종식문제에서도 중요한 진전을 이룩했다.

이날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간에 합의된 휴전안은 캄보디아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캄보디아에 대한 유엔관리를 규정함으로써 「지역분쟁 역사상 유엔의 가장 깊은 개입」을 예고했다.

지난달 25일 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사용 승인을 통해 과시된 유엔의 새로운 협조정신은 탈냉전시대의 미소 동반관계를 반영하는 한편 국가적 이해가 일치되면 집단행동으로 나아간다는 국제관계의 새로운 기본원칙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 유엔이 창설때부터 간직해온 평화구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라크의 8ㆍ2 쿠웨이트 침공이후 지속적으로 채택된 5건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의 분쟁해결 중재선언은 유엔을 아라비아 반도의 전쟁방지 매체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결의안들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 ▲사담 후세인 정부에 대한 경제제재 ▲쿠웨이트 합병 무효선언 ▲외국인 인질화 및 외국공관 폐쇄 철회요구 ▲이라크에 대한 무력 해상봉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 45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러한 연속 합의는 5대 상임이사국인 미ㆍ영ㆍ불ㆍ중ㆍ소의 권한포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소의 안정 요구가 투영된 새로운 국제외교 환경,즉 분쟁은 세계가 하나로 뭉쳐서 대처하는 것이 돈도 덜 들고 효과적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은 유엔의 성공여부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엔의 조치가 실패할 경우 미국은 무력으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할 것인지,아니면 대규모의 미군을 사우디아리비아에서 영구히 주둔시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부시 미 대통령은 케야르 총장의 중재선언에 대해 『유엔이 미국의 이해에 기여한다면 유익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평하면서 페만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중재활동에 나선 케야르에게 「어떠한 권한도 위임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부시로서는 걱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중재활동이 실패하더라도 잃을 것은 케야르의 체면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국가수뇌들이 기피하는 일부 위험부담을 떠맡아 주는 것이다.

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봉쇄 결의안은 미국이 추진한 강경정책에 국제적인 합법성을 부여한 것이었다. 부시의 전략은 레이건의 정책과 대조된다. 부시 행정부는 유엔을 통해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적법화하고 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3년전 이란­이라크 전쟁중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쿠웨이트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쿠웨이트 유조선에 유엔기를 달게 하자는 소련제의를 거부했다.

세계인의 머리에 새겨진 초기 유엔의 이미지는 비토권을 행사하는 소련대사의 찡그린 얼굴과 소란스러운 안보리 회의 광경이었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사상최초의 유엔군 파병을 결의한 안보리는 소련의 보이콧 속에 소집된 것이었다. 미소 대결로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됐던 냉전시대에 유엔의 중심은 실제적인 힘이 거의 없는 총회로 넘어갔고 숫적으로 우세한 제3세계 국가들은 유엔을 반서방 선전장으로 만들었다.

유엔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2년전 소련의 대외정책이 데탕트 지향으로 선회한 이후부터다. 지난 2년간 소련은 유엔의 활성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세계가 더욱 평화롭게 되어야 군비를 삭감할 수 있고 또 소련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모스크바의 판단이 유엔 강화론을 펴게 한 것이다.

어느 국제정치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소련에 있어 유엔은 세계무대에서 발을 빼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큰 합법성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간의 협력분야가 늘어나면서 유엔 사무처는 지역분쟁의 해결을 돕는 역할을 확대할 수가 있었다. 케야르 총장과 그의 보좌관들은 이란­이라크 8년전쟁의 휴전을 중재했고 나미비아 독립을 감독했다. 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계획을 조정했으며 캄보디아ㆍ중미ㆍ서사하라 등의 분쟁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같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만 사태를 둘러싼 미소 협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강국 미소의 이해가 일치하면 할수록 지역분쟁 해결에 유엔이 더욱더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1990-09-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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