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고아들에 「눈물의 성금」/재일동포 할머니,1천만원 선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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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4-23 00:00
입력 1990-04-23 00:00
◎오흥란씨,혜심원 찾아/청소원등 궂은일하며 평생 모은돈 “어렵게 번돈 값지게 쓰고 싶었다”

육순의 재일교포 할머니가 가정부와 파출부등 온갖 궂은일을 해가며 한평생 푼푼이 모은 1천만원을 고국의 고아원에 내놓았다.

21일 하오 서울 용산구 후암동 혜심원(원장 임혜옥·71)을 찾은 오흥란할머니(68·일본천기시소천정18의1)가 임원장에게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성금을 전하는 순간 임원장은 물론 이를 지켜보던 50여명의 고아들은 오할머니의 그 큰 뜻에 감동,모두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릴때부터 낯선 이국땅에서 너무나 외롭고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조국에 있는 외로운 어린이들에게 조그만 정이라도 전달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오할머니는 이어 일본에서부터 갖고온 꽃사탕을 어린이들에게 손수 나누어 주며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담겨진 정성만은 크다는 것을 알아주니 더없이 고맙다』고 스스로도 감격했다.

할머니는 지난 23년 경기도 여주군 북남면에서 부유한 농가의 맏딸로 태어났으나 8살때어머니를 여읜 뒤 8번이나 재혼한 아버지밑에서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다. 17살 되던해 이를 보다못한 아버지의 친구가 나서 일본 규슈 오이다켄에 사는 한국 청년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남의 땅 5마지기를 빌려 농사를 짓는 처지이긴 했지만 남매를 낳고 평생 처음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31살때인 53년 남편이 남매와 함께 실종되면서 다시 혼자몸이 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자 혼자서는 농사를 지을수 없다고 일본인 지주가 땅마저 모두 빼앗아 갔다.

살길이 막연해진 할머니는 할수없이 도시로 나가 남의집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달 월급 2천엔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았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살림살이 사들이는 것도 돈이 아까워 골방에 사과궤짝을 쌓아놓고 옷장 등으로 삼았고 주인집 쓰레기통에서 내버린 헌옷을 주워 기워 입었다.

15년동안 이처럼 가정부 파출부 식당주방청소원 등을 전전하며 고생고생한 끝에 마침내 1천만원이 넘는 돈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할머니는 이 돈 가운데 1천만원은 고국의 고아들몫으로 떼어내고 나머지 얼마안되는 돈으로 작은 가게를 전세내어 주점을 차렸다.

일본 불량배들이 몰려와 장사를 방해하고 금품을 뜯어가는 바람에 장사가 잘 안돼 문을 닫게 될 판이었으나 은행에 넣어둔 1천만원은 절대로 손대지 않았다. 고생끝에 얻은 고질병인 당뇨와 고혈압으로 사경을 헤맨적이 수십번이었으나 예금통장을 부둥켜 쥐고 참으며 제대로 치료 한번 받지 않았다.

『불우한 고아들에게 이돈을 전달하지 못하고 죽게되면 내가 고생하며 살아온 것이 진짜 물거품이 된다』고 혼잣말을 되뇌며 참았다.

『이제 내손으로 내 정성을 어린이들에게 전했으니 소원을 다 이룬셈』이라는 오할머니는 『앞으로도 고국의 고아들을 계속 돕는 것이 남은 소망』이라고 말했다.<박대출기자>
1990-04-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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