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신문등 읽고 「북한모순」깨달아”/유학생귀순 잇달자 감시원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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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4-03 00:00
입력 1990-04-03 00:00
◎망명 두북한학생 회견

2일하오 대한항공902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한의 소련유학생 남명철ㆍ박철진씨는 도착직후 공항귀빈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얼떨떨해 소감은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수명의 남조선사람을 통해 자유가 있다는 확신이 섰다』고 귀순소감과 동기를 밝혔다.

­두 사람의 인적사항을 자세하게 얘기해 달라.

▲(박철진)65년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유성고등중학교를 거쳐 김책공과대학 전자계산학과를 다녔다. 남군과는 같은 중학교와 같은 대학 동창이다.

(남명철)85년3월 김책공과대학 재학때 소련 레닌그라드대에 유학했다. 이전에는 대학교에서 유학생을 위한 노어강습을 받았다.

­탈출경로와 망명동기는.

▲지난 3월25일 소련에서 동독으로 가 서독을 거쳐 프랑스의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했다. 여행증명서를 주소북조선대사관에서 일괄적으로 보관하고 있어 국경을 넘을 당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불법적으로 넘어야 했다. 그분의 신변보호를 위해 자세히 말할 수 없다. 어느 한 순간의생각으로 이러한 모험을 감행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보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소련의 여러 출판물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학기간동안 소련의 신문들을 통해 남조선의 정치ㆍ경제등의 객관적사실을 알게됐다. 정치의 자유와 물질의 부유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망명동기는.

▲이러한 모든 북조선에 대한 객관적 사실인식을 토대로 우리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조국으로서 남조선을 택했다. 이 조국의 민주와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현재 많은 북한의 유학생들이 소환되고 지난 89년에만도 3차례나 동유럽유학생이 우리나라에 망명했는데 소련유학생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해달라.

▲서방세계의 라디오등을 통해 유학생 소식을 듣고 있으나 공개적이고 본격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89년5월부터는 당원들을 파견해 학생생활을 감시하고 있다. 지난해말부터는 여행증명서(비자)를 모스크바의 북조선 대사관에서 한꺼번에 모아놓고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동유럽에는 8천7백여명의 모든 유학생이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물론 외교일꾼은 예외다. 소련에는 5백여명의 유학생과 연구생ㆍ실습생등 1천여명이 있다.<유민기자>
1990-04-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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