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나래」모스크바에 첫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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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4-02 00:00
입력 1990-04-02 00:00
「승객여러분 저희 항공기는 방금모스크바의 세례메치예프 공항에 도착했읍니다. 지금시각은 상오1시58분입니다.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첫 취항에 탑승해 주신 것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모스크바의 4월은 역시 봄인데도 밖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그러나 기온은 예상보다 포근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40분 4백10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을 떠난 대한항공 913편(기장이상재.58)보잉747기가 10시간17분만에 모스크바 공항에 안착하는 순간 이곳에서 내린 45명의 승객은 물론, 이항공편으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스위스 취리히까지 가는 3백55명의 통과여객들도 모두 마음속으로부터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태극마크도 선명한 KAL기는 계류장으로 들어가 멎었고 로딩브리지를 통해 소련땅을 처음밟았다.
탑승객들은 공항청사 입구에서부터일단의 환영인파에 휩싸였다.이곳에 사는 교민 50여명이 손에손에 태극기와 소련기를 들고「어서오십시오」라며 일행을 따뜻이 맞았다.
이 가운데는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교민3.4세 청소년들도 끼어 있었다.치마 저고리를 곱게 받쳐 입은 여성들도 여러명있었다. 승객들이 이들환영객의 안내로2층입국장에서 입국수속을 밟을때 3층트랜짓라운지(통과여객대합실)로 가던 통과여객들은 아래층의 모스크바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부러운듯 모두난간에 줄지어 서서 내려다 보았다.
소련의 공항당국자들은 다소 행동이 느린듯했으나 우리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승객들은 5층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한밤중인데도 성대한 아에로플로트 관계자와 공노명초대소련영사회처장과 재소교민회의 미하일박회장,허진부회장등 많은 교민들이 참석했다.공처장은 기념사를통해「1945년12월 모스크바에서삼상회담이 열리던 때만해도 45년뒤 이와같은 큰역사적인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상기시키고「돌이켜보면 양국항공사에는 대단히 가슴 쓰라린 일도 있었으나 이제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우애를 다져나가자」고 말했다. 서울∼모스크바 정기항공노선의 개설축하를 위해 함께도착한 우리측이헌석사절단장(교통부 항공국장)은 도착성명에서 그동안의 양국 항공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오늘날 한.소간에 정기노선의 교류가 트이게 된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북방정책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접합점을 이루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지적하자 특히 소련측 관계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소련의 항공관계자들은 아에로플로트의 서울취항과 함께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취항은 두나라 관계개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51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모스크바행 첫KAL기는 강릉상공을 지나 30분만에 동해로 빠져 9시32분 일본영공에 들어섰다.도쿄관제탑과의 교신에서 안두찬부기장은「주긴항로인 니가타(신석) 상공까지 갔다가 소련영내로 들어가는 대신 카두보로 직항하겠다」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도쿄관제탑은 곧 항로수정을 허용하겠다고 알려왔다.하오10시40분「여기는 하바로프스크,다이얼을 12450으로맞추어라.현재 위치와 속도.고도를 말하라」는 소련관제자의 영어무선방송이 들려왔다. 소련 상공을 유유히 날으고 있는 KAL기와 소련관제탑과의 첫교신이었다.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고 별빛은 초롱초롱했으나 아래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이 여객기로 2일부테 레닌그라드에서 개최되는 비행안전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합승 한 한국항공대 홍순길교수(52)는 「모스크바에 태극날개가 취항하다니….형용할 수없는 감개를 느낀다」고 말하고 10년전외국항공기로 모스크바공항에 1시간 기착했을때 무슨일이 없을까 마음조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비행10시간17분만에 기수는 드디어 아래로 숙였다.모스크바였다.
1990-04-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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