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작업선 침몰 안전불감증이 부른 ‘人災’
수정 2012-12-16 16:47
입력 2012-12-16 00:00
근로자 먼저 대피시키지 않았고 닻 철수도 안전 무시
인재로 보는 이유는 세가지다.
첫째 선박 피항 전에 근로자와 선원부터 먼저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선박인 석정36호가 기상악화로 피항 준비를 시작한 시간은 14일 낮 12시.
사고가 난 시각은 같은 날 오후 7시10분으로 7시간 넘게 여유가 있었다.
사고 해역에는 이날 낮부터 비바람과 파도가 거세게 일다가 오후 8시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됐다.
작업선을 피항시켜야할 정도로 기상 상황이 나빴기 때문에 사람부터 먼저 대피시키고난 후 선박 피항 준비를 했다면 대형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해경의 판단이다.
두번째는 선박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작업선의 닻(앵커)을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석정36호는 해상 콘크리트 타설 장비를 실은 바지선이다.
바다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타설 장비가 있는 선수 쪽에 닻 2개, 선미 쪽에 닻 3개를 해저에 단단하게 설치해 놓고 있다.
바지선에는 자체 동력이 없어 피항을 위해 닻을 올릴 때는 예인선의 도움을 받는다.
해경이 조사한 결과 예인선은 타설 장비가 있는 선수 쪽의 닻 2개를 먼저 끌어올리고 선미 쪽으로 이동했지만 이 때 닻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고장이 났다.
예인선의 펌프가 고장난 시각은 전복사고 발생 3시간 전인 오후 4시쯤이었으나 추가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석정36호의 선수 쪽의 닻 2개가 모두 뽑히고 선미 쪽의 닻 3개만 고정되어 배가 복원력을 잃은 상황에서 계속 높은 파도가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2천t이 넘는 5개의 콘크리트 타설 장비(높이 80∼86m, 전체 폭 30m)가 크게 흔들렸고 타설 장비 지지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중간 부분이 부러진 것으로 해경은 보고 있다.
타설 장비가 부러지면서 식당, 사무실, 작업실 등 근로자와 선원이 몰려 있던 3층 규모의 구조물과 갑판을 덮쳤고 10여분 후 배가 전복됐다.
해경은 예인선이 선수 쪽과 선미 쪽의 닻을 차례로 1개씩 제거했더라면 배가 전복되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10분전 타설 장비의 이상을 발견한 현장소장이 선원과 근로자를 갑판 쪽으로 대피시키고 예인선을 불러 선미 쪽 닻 3개를 끊으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마지막으로 이 배가 타설 장비를 설치하면서 안전규정을 지켰는지 모호하다.
바다의 연약지반을 다지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선인 이 배는 항타선(DCM, 일명 말뚝박기선)으로 불린다.
석정건설이 지난 84년 일본에서 사들일 당시 타설 장비인 천공기는 모두 6개였다.
그런데 지난 4월까지 천공기가 3개였다가 지난 7월 이 공사장에 투입될 때는 5개로 늘었다.
천공기를 뗐다 붙였다 한 것이다.
천공기가 설치된 석정36호는 무동력선이라 선박안전법상 선박 검사 대상이 아니다.
육상의 천공기처럼 정형화 돼 있지 않고 필요에 의해 개조된 장비여서 건설기계법상 건설기계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법적 기준이 없는 무등록 장비인 셈이다.
해경은 그러나 16일 현장소장과 회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이 천공기의 구조변경 과정에서 안전규정을 지켰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해경은 또 이들을 상대로 근로자 대피 등 안전조처 미흡 여부에 대해서 수사를 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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