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님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가시는 길에
수정 2009-02-18 00:18
입력 2009-02-18 00:00
나태주 시인
생각과 마음 다르고
비록 얼굴 뵈온 일 없어도
추기경님은 우리의 영원한 추기경님
잠시나마 당신 같은 어른과 함께
같은 땅에서 같은 바람 마시고 산 것이
더없는 영광이요 감사였습니다
병든 이들과 핍박받는 이들과
버림받고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지극히 낮게 가난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음이 가장 마음 아프셨다는
한없이 높은 마음의 어른
마지막 고요한 숨결 남으실 때까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란 말씀
입에 달고 사셨던
우리 옆집 할아버지 같았던 성자
마지막으로 주신 당신 말씀
‘평생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십시오’
저희들 내일도 여전히 다투고 불화하고
어리석게 살겠지만 때로 그 말씀 떠올리며
조금은 잘 살아보려고 애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지요?
어제 몹시 추운 겨울날 저녁 어스름
지구라는 별의 동방에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
오랫동안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의 하늘이었던
한 사람이 당신 나라로 가시었습니다
조금은 먼지바람 날리고 흐릿한
황색의 햇빛이 사선으로 비치는 가느른 길
조선종 어리고 순한 노새의 잔등에
여든 일곱 해를 살아 지치고 늙은 인간의 몸을 얹고
하나님의 선하신 백성 한 분 그 나라로 가시었습니다
추기경님!
당신과 더불어 이 땅의 사람들
오래 따뜻하고 행복했음을 당신도 아시지요?
오늘, 당신 선종하셨다는 소식 듣고
많은 사람들 뜨거운 눈물 뿌려 인간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저희들 눈물로 하여 추기경님도 잠시
평안하시고 행복하시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으신 당신 이 땅에 보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추기경님 안녕히!
하나님께도 안녕을!
나태주 시인
2009-02-1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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