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은 곧 인권” 빈민 600만명에 희망
●`마이크로 크레디트´ 창안 실천적 경제학자
1940년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금(金)세공업을 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누스 박사는 다카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밴더빌트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치타공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경제학 이론만으로는 빈곤타파에 한계를 느껴 직접 빈곤퇴치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 인근 빈민들의 삶을 직접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대나무 제품을 만들어 생활하는 마을 주민들이 단돈 27달러가 없어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는 것을 목격하고 빈민들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인 ‘마이크로 크레디트’라는 혁명적인 방법을 창안했다. 빈민들에게 소액의 종자돈을 무담보로 대출, 자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처음에는 자신의 돈을 주민들에게 빌려주었지만 1976년에는 자신이 직접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국립은행에서 돈을 빌려 수혜자의 폭을 넓혀 갔고, 그래민은행의 초석이 됐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신경쓰지 않았지만 1979년 이같은 방식으로 500가구가 회생하자 마침내 중앙은행이 동참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학교를 떠나 본격적으로 은행업무에 뛰어들었고,1986년 이 은행은 정식은행 인가를 받았다. 상환율은 98%에 이르고 1993년부터 흑자도 돌아섰다. 현재 직원 1만 8151명, 지점 2185개를 운영하는 거대은행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600만명의 빈민이 혜택을 받았고 이 가운데 58%가 이 제도로 가난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빈곤퇴치 이외에 이 제도는 여성들의 인권도 신장시켰다. 주로 여성에게 대출해 줘 이들이 경제활동의 주역이 되게 함으로써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래민은행 대출자 가운데 96%를 여성이 차지하면서 여성이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신용대출은 곧 인권’이라는 신념으로 “빈곤은 빈민들의 게으름과 무능 때문이 아니라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은 담보대출과 같은 사회구조 탓”이라고 유누스 박사는 역설했다.
●100여개국에 빈곤퇴치 기법 전수
그래민은행이 방글라데시에서 성공하자 1997년 139개국에서 2900여명이 미국 워싱턴에 모여 ‘마이크로크레디트’ 정상회의를 열기도 했고 유엔도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로 정해 유누스 박사의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전 세계에서 기법을 전수받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설립된 그래민 트러스트는 한국을 포함한 100여개국에 기법을 전수했다. 이 가운데 37개국에서는 직접 금융지원을 실시,9200만명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도시빈민과 신용불량자들의 빈곤 탈출을 위해 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