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전업주부’ 9년째 차영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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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길회 기자
수정 2005-12-14 00:00
입력 2005-12-14 00:00
“전업 주부(主夫)를 하겠다는 남성들, 진정으로 양성평등 의식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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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째 안살림을 맡아 하고 있는 차영회씨가 남성 전업주부의 애환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9년째 안살림을 맡아 하고 있는 차영회씨가 남성 전업주부의 애환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차영회(46)씨는 올해로 9년째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고 출판업에 종사했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의 칼바람에 직장을 잃은 뒤 아내 대신 집안일을 돌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아내가 회사에서 팀장이 돼 연 4000만원 이상을 벌어 오지만 당시만 해도 아내만의 수입으로 살림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도 어린 아들(현재 초등학교 6학년)을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놀 때 받았던 따가운 시선이 더 힘들었다. 강산이 한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로써 사람을 봐야 하는데 성별에 따라 일을 구분하고 있죠. 밖에서는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유독 집에서만은 남녀 역할이 고정돼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떠밀려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지만 9년간 느끼고 체득한 바가 크다. 집안일을 하면서 비로소 아내를 이해하게 됐고, 거기에서 우러나온 믿음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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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방송을 통해 ‘살림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던 것은 동성애자의 ‘커밍아웃’과도 같았다. 요즘 젊은 남성의 상당수가 ‘나도 집에서 살림할 수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엄청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젊은 사람들이 그저 기특하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겠다는 생각이 양성평등 의식에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살림하겠다는 남자들 가운데 지금 집에서 직접 양말을 빨아 신고 설거지 하는 사람의 비율이 30%라도 될지 의문입니다. 지금도 안하는데 나중에 결혼에서 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허풍 아닌가요.”

이혼 사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성격차이’는 상당부분 가사분담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만 가사를 미루는 게 불씨가 돼 결국 이혼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가정의 일은 어느 한쪽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그는 “요즘 가정해체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면서 “속을 들여다보면 70% 이상이 남자로부터 문제가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전업주부로서 그가 얻은 것은 아내에 대한 이해, 나아가 여성에 대한 이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직접 키울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는 그 어떤 경험보다 소중하다. 요즘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대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그동안 함께 해왔기 때문에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오징어로 만드는 요리 빼고는 웬만한 음식은 문제없다는 주부 차영회씨. 사회생활과 집안일 모두 경험해 본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한테 가장 맞는 것, 상대방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돕는 것이 바로 함께 살아가는 법 아닐까요.”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2005-12-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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