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고맙다”…회한의 자녀상봉
수정 2014-02-21 00:00
입력 2014-02-21 00:00
60년 기다린 만남…치매·노환에 가족 기억 못 하기도
/
13
-
20일 오후 3년 4개월만의 제1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호텔에서 열린는 가운데 32번 박양곤씨가 납북되었던 형 박양수 씨를 만나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2014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째인 20일 북한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행사에서 남측의 이영실(왼쪽)씨가 북측의 동생 리정실 씨를 만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2014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째인 20일 북한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행사에서 남측의 류영식(왼쪽)씨가 북측의 조카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양곤아”… “형님”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1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박양곤(오른쪽)씨가 납북됐던 형 양수씨를 만나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이게 얼마만이냐”3년 4개월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남측 상봉단 최고령자인 김성윤(오른쪽·96) 할머니와 동생 석려(80)씨가 만나 서로 껴안으며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금강산 연합뉴스 -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면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려 했던 금강산 관광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1차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이산가족들이 방북한 20일 강원 고성군 현대아산 휴게소 주차장의 관광버스들이 눈에 갇혀 있다.
연합뉴스 -
<이산가족> 눈물의 상봉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이선향(88)할머니가 동생 이윤근(72)를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1차 상봉에서는 남측 상봉 대상자 82명과 동반 가족 58명이 북측 가족 180명을, 23∼25일 진행되는 2차 상봉에서는 북측 상봉 대상자 88명이 남측 가족 361명을 만날 예정이다. 이산가족들의 대면 상봉은 2010년 11월 이후 3년 4개월 만이다.
연합뉴스 -
방북하는 이산가족 차량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남측 이산가족과 지원인력 등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가 20일 오전 동해선 육로를 따라 금강산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4년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 1차 첫날인 20일 오전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에서 동생을 만나러 가는 허경옥(86)할머니가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10년에 열린 이산가족 상봉 이후 약 3년 4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상봉은 남측 상봉 신청자가 북측 가족을 만나는 1차 상봉(2월20∼22일)과 북측 신청자가 남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2월23∼25일)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연합뉴스 -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우리 측 상봉자인 김섬경씨가 등록 절차와 건강검진을 마친 뒤 숙소가 마련된 강원 속초시 한화콘도 내부로 이동식 침대에 누워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에 1차 상봉 대상자들과 가족들이 도착, 등록을 하고 있다. 남측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83명은 동반 가족 61명과 함께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북한 금강산에서 1차 상봉을 가진다. 이산가족들의 대면 상봉은 2010년 11월 이후 3년 3개월 만이다.
연합뉴스 -
오는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남측 상봉자들이 집결해 하루를 묵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18일 직원들이 행사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루 앞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적십자 관계자들이 행사 기간에 사용될 의약품을 화물차에 싣고 있다.
이번 상봉행사는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아버지는 평생을 미안해하고 그리워하던 딸을 앞에 두고 밀려드는 회한에 말을 잇지 못했다.
3년4개월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20일 오후 금강산호텔. 전쟁통에 헤어진 부모와 자식이 60여 년 만에 재회했다.
손기호(91) 할아버지는 딸 인복(61)씨와 외손자 우창기(41)씨를 만났다.
손 할아버지는 딸을 눈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한채 눈물만 흘렸다. 인복 씨는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울면서 아버지를 껴안았다.
손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부모님과 아내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딸은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다음에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경비가 강화되면서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당시 딸은 두 살이었다.
손 할아버지는 “헤어질 때 마루까지 나와 손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라며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박운형(93) 할아버지도 북한에 두고온 딸 명옥(68)씨와 동생 복운(75·여)·운화(79)씨를 만났다.
박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석 달이면 돌아갈 수 있겠지 하던 세월이 60년을 훌쩍 넘기게 됐다.
명옥 씨는 박 할아버지가 25살 되던 해 해방둥이로 낳은 딸이다. 헤어질 때 예닐곱살 소녀였던 딸은 이제 67살 할머니가 돼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박 할아버지는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다”라며 “두 세상을 사는 기분”이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그는 딸과 동생들에게 “통일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며 또 한 번의 기약없는 이별을 미리 준비했다.
강능환(93) 할아버지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들 정국(64)씨와 처음으로 만났다.
결혼한 지 4개월도 안 된 아내와 1·4 후퇴 때 헤어진 강 할아버지는 아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 60여 년을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돼 생사확인을 거치면서 북한에 남긴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하지만 상봉장에 마주선 아들과 아버지는 한눈에 봐도 영락없는 부자였다.
강 할아버지는 “한번 안아보자”라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둘은 얼싸안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강 할아버지와 동행한 남쪽의 또 다른 아들은 이북의 형에게 “형님,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남쪽 아들은 북쪽 아들보다 키가 10cm는 더 컸고 덩치가 훨씬 좋았다. 하지만 두 형제는 서로 운동을 좋아한다며 피붙이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60년이라는 시간은 그토록 그리던 가족에 대한 기억마저도 지울 만큼 긴 것이었다.
몇몇 이산가족들은 치매 등 노환으로 가족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영환(90) 할아버지는 북녘에 두고 온 아내 김명옥(87) 씨와 아들 대성(65) 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 82명 가운데 배우자를 만난 것은 김 할아버지가 유일하다.
김 할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을 피해 혼자 남쪽으로 잠시 내려와 있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당시 아들 대성 씨는 5살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이후 남쪽에서 결혼해 4남1녀를 뒀다.
김 할아버지와 이번 상봉에 동행한 아들 세진(57) 씨는 “아버지는 북쪽 가족들에게 젊을 때 그렇게 헤어졌다는 미안함을 안고 살았다”라며 “가족들을 만나면 보고싶고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할아버지는 연로한 탓인지 아내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세진 씨는 “너무 오래돼서 약간 못 알아보신다”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추스렸다.
이영실(88) 할머니는 딸 동명숙(67) 씨와 동생 정실(85·여)씨를 만났다.
그러나 치매를 앓고 있는 이 할머니는 딸과 동생을 모두 알아보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전쟁통에 두 딸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잠시 남한으로 피난왔다가 휴전이 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두 딸 중 맏이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명숙 씨는 이 할머니가 자신과 이모를 알아보지 못하자 “엄마, 이모야, 이모, 엄마 동생”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이 할머니의 계속 손을 잡고 귀엣말을 하며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정실 씨도 탄식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이 할머니와 동행한 딸 동성숙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이모와 혈육의 정을 나눴다. 성숙씨는 “엄마가 오실 수 있을지 몰랐는데 엄마가 꼭 나와야 한다고 해서 왔다”라며 흐릿한 정신에도 북녘 가족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이 할머니의 마음을 전했다.
이 할머니는 평생을 북한에 두고온 딸들 생각에 명절 때면 몰래 숨어 울곤 했고, 이 할머니의 남편은 내내 애통해하다 4년 전 세상을 떴다.
이번 1차 상봉에서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북한에 있는 자녀와 만났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