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인혁당’ 무기징역형 전창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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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길회 기자
수정 2005-12-08 00:00
입력 2005-12-08 00:00

“고문 못이겨 살기위해 거짓진술 국정원 30년만에 결자해지 감격”

“30년 넘게 왜곡됐던 진실을 다른 곳도 아닌 국정원에서 밝혀내니 ‘결자해지’라는 말이 떠오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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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창일 통일연대 상임고문이 7일 서울 이문동 자택에서 사건 내용을 담은 책을 펼쳐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창일 통일연대 상임고문이 7일 서울 이문동 자택에서 사건 내용을 담은 책을 펼쳐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국가정보원이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날조를 시인한 7일 전창일(77) 통일연대 상임고문은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전씨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0.75평 독방에 수감돼 있다 9년 만에 석방됐다. 그는 “굳은 양심과 결의로 진실을 밝혀준 국정원 조사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발표 전 “국정원이면 중정(중앙정보부)의 후신인데 어떻게 믿겠느냐.”며 강한 불신을 갖고 있던 터라 더욱 감격스러운 듯했다.

1974년 건설회사에서 중동지역 수주를 담당했던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로부터 초청장을 받고 여권까지 신청해 둔 상태에서 갑자기 중정에 끌려갔다.

무차별 구타와 물고문에 전기고문까지 당할 때에는 3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머리를 깨버리고 싶었다. 결국 ‘폭력혁명을 꾀했고 다른 사람들과 접선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는 거짓자술서를 썼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당시의 충격으로 병을 얻은 아내는 30년을 병치레로 고생하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도 못본 채 2003년 세상을 떴다. 전씨는 “이렇게 기쁜 날 혼자라니….”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서울지법에 당시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지만 3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죽은 사람의 목숨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지만 명예만큼은 반드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국가권력의 횡포로 억울하게 형극의 길을 걸어온 유족들에게는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요.”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2005-12-0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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