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바닷가보다 처연한 ‘물결 우는 오름’… 이별은 연습해도 익숙하지 않다[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수정 2023-09-16 09:50
입력 2023-09-16 00:56
그런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걸으멍, 쉬멍, 놀멍 가다보면, 그 옆으로 보이는 풍광보다 뒤돌아 볼 때의 뒷모습이 처연할 정도로 시리고 아름답다. 송악산에서 휙~하고 뒤돌아보라. 그 언덕에 올라 마치 잊고 있다가 불현듯 생각난 듯 뒤돌아 보라. 당신의 지친 영혼을 맑게 해줄 아름다운 뒷모습에 빠지고 만다. 가보지 못한, 가보고 싶은, 영화 ‘라스트 콘서트’(1976년 루이지 코지 감독 作)에 나오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수도원의 그 바닷가만큼, ‘스텔라에게 바치는 사랑’ OST만큼 처연한 아름다움이 현기증나게 한다.
# 흠뻑 젖은 가슴을 햇빛에 말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실의 시대에 만난 송악산
그리고 이별은 언제나 연습해도 익숙하지 않다. 부재에 익숙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도 내일도 이별하지만, 할 때마다 늘 아프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은 사치처럼 들린다. 송악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며 언제나처럼 흠뻑 젖은 마음을, 꾸역꾸역 산책하며 ‘햇빛에 말리지’ 않으면 스멀스멀 슬픔이 물결되어 울었다.
당시 사계포구를 지나 형제섬을 바라보면서 송악산까지 무작정 걷는 게 전부였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날, 풍광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어느날, 처음으로 보았다. 무심코 뒤돌아보았을 때 마음 안으로 들어온 풍광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한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듯 했다. TV 정규 프로그램을 끝내기 직전에 나오는 애국가에서 보았던 그 희망찬, 찬란한 태양이 형제섬 사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푸른 사계바다, 그 신령스런 산방산, 멀리 보이는 박수기정, 더 멀리 보이는 범섬과 더 멀리 있어도 든든한 한라산…. 이 모든 것들이 그제서야 내 안에 들어왔다.
한번쯤 송악산 그 언덕을 올라가 뒤돌아보라. 숨이 멎을 듯한, 비현실적일만큼 아름다운 섬과 바다가 지친 당신을 위로해주는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내어 말리기 좋은 산이 송악산이다. 제주는 동쪽 끝에선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가 관광객을 반긴다면, 서쪽 끝에선 산방산과 송악산이 관광객들의 명승지로 사로 잡는다. 그 옛날 이른 아침의 안개와 저녁노을이 이루 형용할 수 없어 시인묵객들이 몰려들던 곳이 지금은 이른 아침부터 사진작가들의 출사여행 첫손으로 꼽히는 명소로 바뀐 지 오래다. 가을이 오나 보다. 바람은 기분 좋게 살랑거린다.
#물결 우는 오름… 그러나 뒤돌아가고 싶은 페이지처럼,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송악산은 제주의 최남단에 위치한 오름으로 ‘절울이(절워리, 저벼리)’라고도 한단다. 절이 물결을 가리키므로 ‘물결 우는 오름’이라는 의미다. 파도가 송악산 아랫도리 절벽과 부딪쳐 울리는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송악산은 초기의 수성 화산활동과 후기의 마그마성 화산활동을 차례로 거친 화산으로 먼저 폭발한 큰 분화구 안에 두번째 폭발로 지금이 주봉이 생기고 거기에 작은 분화구가 생겨난 이중화산체로 주위에 기생화산이 발달하여 99봉이라고 일컫는다.
조선 유학자 청음 김상헌 선생은 송악산과 99봉의 절경을 옛날부터 이곳을 영주라 했는데 ‘바다 돌며 모두가 놀만한 명산일세. 하늘까지 솟은 노대는 만길 위에 서 있고, 석반과 운골은 천추에 늙었구나. 피리부는 달밤에 선녀를 만났으니, 염막의 봄바람에 신기루를 보겠구나. 가벼히 둥둥떠서 신선된 듯 느껴지니, 곧바로 하늘을 날아 봉래산에 가리로다’라며 칭송했다고 한다.
주차장 초입에서 왼쪽 언덕으로 오르자 마자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잇는 진지동굴과 마주한다. 당시 일본군의 군사시설로 1943~194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송악산에는 크고 작은 진지동굴이 60여개소나 되며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 가운데 하나였다. 송악산 벼랑 끝 해안동굴은 ‘대장금(2003년)’ 드라마 촬영지의 배경이 되어 지금도 중국인들은 그 아래까지 내려가서 인생샷을 만들기에 바쁘다.
#마라도와 가파도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 볼 수 있는 육지, 송악산송악산 탐방로는 일부 구간인 부남코지~1전망대 구간은 통제되고 있다. 정상부 역시 일부 구간이 자연휴식년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도는 2027년 7월말까지 5년간 출입제한을 연장했다. 정상을 10여분 오르면 신비로운 분화구가 숨어 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분화구다.
‘등산에 걸리는 시간이 산의 높이를 재는 척도는 아니다’(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고 한 말이 실감 난다. 송악산은 해발 104m로 낮은 오름이어서 금세 내려오고 만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산이수동부녀회의 집’과 ‘바람부는 언덕’ 식당 해산물 모듬(대 3만원.소 2만원) 한상을 받기에는 이른 아침, 다시 남쪽 해안 둘레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다. 말들을 풀어놓은 들판 앞으로는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보이는 송악산의 풍광을 놔두고 돌아서기는 결코 쉽지 않다. 송악산이 품은 둘레길까지 돌지 않으면 배겨낼 수 없다. 아마도 3㎞ 이상 걷는 둘레길에서 만나는 가파도. 그 아기자기한 섬 속의 섬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송악산 둘레길 중 남서쪽의 비경을 놓치면 어쩌면 인생의 방점을 찍지 못한 듯 찜찜할 수 있다. 나무데크(수리 중)가 늙어 삐걱삐걱대는 소리를 참으며 내딛으면 아름다운 절벽과 해안이 소나무 사이로 삐죽 얼굴을 내민다. 둘레길 끝에 만나는 소나무숲길에선 땀 흘려 걸어온 시간을 보상받 듯 청량함을 선물받는다.
최근 제주도는 송악산 맞은편 유원지 일대를 중국 자본 신해원으로 부터 사유지를 매입하기로 하고 알뜨르비행장과 이어지는 평화대공원 조성 청사진을 내놓았다.
# 이종우 서귀포시장이 말하는 故 노무현 대통령은 “꾸밈없고 소탈… 고위인사론 첫 섯알오름 찾아”
고(故)노무현 전대통령(1946.9.1~2009.5.23)이 자주 쓰던 말이라며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언급했다. 노 전대통령은 송악산 맞은 편에 자리잡은 섯알오름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노무현 전대통령께선 2002년 당시 고위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송악산 맞은 편에 있는 섯알오름 현장을 찾았습니다. 민주당 경선 후보 당시였고, 대통령 후보가 되기 직전이었죠. 소탈하고 꾸밈없는 성격 그대로의 모습이었죠. 당선되고 나서도 자주 내려올 정도로 제주를 너무 사랑했던 분이셨습니다.”
고(故)노무현 전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이종우 서귀포시장은 지난 13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그후 대통령이 되고 나서 4·3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계기가 된 곳이기도 하다”며 잠시 수화기 너머로 마른 기침을 하듯 침묵했다.
그리고 유족들은 공동으로 부지를 매입해 유해들을 안장한 후 백조일손지지라고 이름을 지었다. 백조일손이란 조상은 100명, 자손은 하나인 무덤이다. 한날한시에 같이 죽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는 채 같이 묻혀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제주 곳곳에선 ‘그날 이후’ 제사도 한날 한시에 하는 마을이 생겨난다.
이 시장은 이어 “고위 정치인이 이런 곳을 찾은 적이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당시 섯알오름의 비극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회상한 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국방·외교만 빼고 미국처럼 연방국가식으로 제주도가 가도 되지 않겠냐고 한 적이 있다”고도 술회했다. 결국 제주도는 노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06년 7월 1일부터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이 시행돼 특별자치도의 길을 걸었다.
황량한 섯알오름을 빠져 나오면서 ‘운명이다’(노무현재단,유시민)란 노무현 자서전에 나오는 문장을 소환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산방산이 신비롭고 신령스러운 산인 이유는 전설에서부터 와 닿는다.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화살을 잘못 쏴 설문대할망의 엉덩이를 맞혔다. 설문대 할망은 홧김에 한라산 정상 암봉을 뽑아서 던졌고 그 암봉이 꽂혀 산방산이 됐다는 설화다. 실제로 산방산과 백록담의 둘레가 비슷하단다. 성분도 조면암이란다. 해발고도 395m. 이 산은 80만년 전 점성이 매우 큰 조면암질 용암이 화구로부터 천천히 흘러나와 멀리 흘러가지 못하고 굳어진 것이란다.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지인 산방산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22년 1월 1일부터 2031년 12월 31일까지 공개제한 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을 금하고 있다. 방문객은 산방산 매표소에서 산방굴사까지 정해진 곳만 출입이 가능하다. 최근 출입금지 구역으로 탐방하던 관광객이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소방헬기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수십계단을 올라 산방굴사에서 바라보는 용머리해안과 사계포구, 형제섬, 송악산은 또 다르다. 송악산에서 바라본 풍경이 웅장한 교향악이었다면, 산방산에서 바라본 풍경은 잔잔한 독주곡을 닮았다. 산방산이 다 모든 것을 품어버린 탓인지 모른다.
오랜 기간의 침식작용에 의해 절벽 아래는 파식대지가 펼쳐져 있고, 절벽 위에는 수많은 풍화혈(風化穴)을 만들어 성산일출봉과 수월봉과는 다른 수성화산체의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제왕의 탄생을 우려한 진시황의 사자 고종달이 혈맥을 끊기 위해 용의 꼬리를 자르고 허리를 두번 내리친 다음 머리를 자르자 피가 솟구쳐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오랜만에 찾은 탓일까. 용머리 해안 매표소 옆에 있던 거대한 하멜상선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깜짝 놀랐다. 매표소 직원에 물었더니 태풍과 해수 등 오랜 풍파에 낡고 낡아 지난해 11월 철거했단다. 20년 영화를 뒤로 했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용머리 해안은 말 그대로 자연이 빚은 걸작이다. 그러나 걸작 앞에 연신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소리도 철썩이며 달려오는 파도소리에 침식 당하고 만다.
사투리로 말하는 해녀들, 그들이야말로 또다른 신이 내린 걸작은 아닐까.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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